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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가] 40. 영덕 선산김씨 용암종택

'우국충절 표상' 대대로 개국공신 가문…어진 사람도 많아

최길동 기자 kdchoi@kyongbuk.com 등록일 2017년02월05일 15시56분  

용암종택

영덕군 창수면 인량리 선산김씨 용암 종택(경상북도 민속자료 제61호)은 조선 시대 용암 김익중(金益重 : 1678~1740 )이 1728년에 지은 살림집이다. 김익중의 본관은 선산(善山)이고 자는 상삼(尙三)이며 호는 용암(龍菴)으로 아버지는 참판으로 증직된 김천길(金天吉)이다. 1721년에 무과에 급제하여 수문장 겸 선전관 을 지내고 미조항과 우수영의 진관(鎭官)을 역임했다. 1728년(영조 4년) 이인좌의 난(1728년 무신년에 일어난 반란이라고 무신란 이라고도 함)을 진압 하는 데 참여한 공으로 양무원종공신록(楊武原從功臣錄)에 올랐다. 사후 통정대부와 병조참의에 추증 됐다.


선산김씨의 시조는 신라말, 고려 초 김선궁(金宣弓)이다. 김선궁의 원래 이름은 김선(金宣)으로 신라 태보 공 김알지(金閼智)의 30세손이자 신라 46대 문성왕의 8세손이며 신라 김씨 왕세대의 마지막 왕손인 김체의 (金 體誼)공의 아들이다. 김선궁은 후에 왕건을 도와 고려를 세우는데 공을 세웠다 선산김씨의 영해 입향조는 김석(金碩)으로 목골과 수일정에 거주했고 그의 후손이 바로 인량에 거주한 김익중이며 병곡면 사천리에 용암정도 보존 관리되고 있다.



△용암정기

단구(丹邱) 남쪽 경산 아래에 용암정이 있다.…중략…공은 어릴 때부터 활을 쏘고 말을 타는 것을 배워 그저 편안하게 물러나 지내면서 군자의 풍모를 간직하고 있었고 또 공을 이루어서도 스스로 선현이 있는 무덤 아래에 돌아가서 늙는 것을 추구하지 않고 자신의 몸을 잊은 채 나라를 위해서 목숨을 바치는 충성심으로 선조를 사모하고 어버이를 사모하는 마음을 다하니 그 평생토록 마음을 쓰는 것은 충과 효 밖에 없었다. 그러한즉 이 정자가 만들어진 것은 어찌 그저 주변 강산의 아름다운 모습만 보고 만든 것이겠는가, 그대들은 선조의 업을 이으려고 한 것이니 그 마음은 선조의 덕을 이어서 충성을 다하고 효를 행하는 가르침을 이어서 영원토록 서로 이어지게 한 것이니 공의 뜻을 없어지게 하지 않은 것이라고 해도 될 것이다. <시경>에 이르기를 “아침에 일찍 일어나고 밤늦게 잠자면서 너를 낳아준 부모에게 욕됨이 없도록 하라” 라는 말이 있으니 나 또한 그대들에게 이 말을 전하 노라… (용암 정기)


△대문채 사랑채

대문채는 세 칸의 평삼문으로 대문 끝 에서 앞쪽으로 담장이 연결돼 있고 대문채의 중인방 높이 정도로 쌓아서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아늑한 느낌을 준다.

대문채를 중심으로 서쪽에 전면 세 칸의 사랑채가 있다. 가운데 한 칸은 분함을 달고 서편으로 바라지창을 꾸민 대청마루를 두었다. 나머지 두 칸에는 온돌을 깔았다 특이한 점은 한 칸은 중문 칸의 지붕으로 덮여 있고, 사랑채의 지붕으로 연결된 한칸이 있다는 점이다. 창문은 띠살무늬 2분합 덧문에 미닫이문 용(用)자 형의 가는 창살로 간략하게 표현했고, 창문을 열면 대문과 협문 사이로 멀리 인량, 원구 들판이 시원스럽게 보인다

사랑마루는 양면을 판벽으로 하고 전면에는 넉살무늬 분합문을 달고 서쪽으로 두 칸에 걸쳐 바라지창을 만들어 놓았다 천장에 꾸며진 선반에는 제사에 쓰는 제사상을 올리도록 만들었으며, 사랑마루가 제사를 위한 공간임을 알 수 있다.

최근 새로 깔끔하게 새로 단장된 초가 이엉이 한눈에 쏙 들어온다

△정침

기단은 막돌로 전면에 선을 맞추어 자연석으로 2벌대를 쌓고, 단을 낮추는 형식으로 안채의 위계질서를 표현하면서 대청마루를 높여 채광을 들이기 좋은 방식으로 지어졌다. 마당에 장독대가 사랑채 쪽에 가깝게 있는데, 가족이 함께 살던 시절 많은 장독대가 줄 맞추어 양식의 보고 역할을 하던 항아리는 지금 대청의 고방이나 도장방으로 옮겨져 있다. 대청마루에는 생활의 변화에 의해서 커다란 냉장고가 장독대를 대신하고 있다. 전면 세 칸에 측면 두 칸의 대청마루를 꾸미고, 방형 기둥으로 조립된 천장은 5량 집의 가구를 하고 있다. 중앙의 대들보는 방형으로 되어 한 번에 앞과 뒤 기둥 위에서 조립되고 기둥머리는 외부로는 직절 하고 내부로는 구름 모양으로 조각된 보아지를 두어 장식적인 조형미를 보여준다. 벽선이 만나는 곳에서는 반 칸 뒤로 물러 안방을 만들기 위하여 내주를 세우고 두 개의 보가 합보되는 방법으로 가구 되어 있다. 도리를 받치는 동자주는 아무 장식 없이 기둥이나 보의 모양처럼 방형 각재를 잘라 꾸며 날렵하거나 섬세한 느낌은 다소 없다. 하지만 이 가옥의 부재들에는 이를 네모 난 방형으로 만들기 위해 사용된 자귀 날 자국이 선명하다. 예전에 일일이 손으로 수백 번씩 자귀를 찍어 깎았던 흔적이 세월의 때와 함께 운치 있고 고즈넉한 분위기를 더해준다.

특이한 곳은 대청마루다. 우선 대청 끝 서쪽 모서리에 방을 두고, 그 앞으로는 툇마루를 대청부터 연결해 후원이 있는 서편에 두 장의 두툼한 판문을 달아 출입문으로 사용하고 있다. 사랑채와 연결되는 통로인 것이다. 또 하나는 대청의 동편 구석에 한 칸의 고방과 상부에는 건넌방에서 사용하는 다락을 두어 가사 살림을 보관하는 장소로 사용하고 있다. 이 두 공간의 문은 판문으로, 채광보다는 문의 보관과 기능에 초점을 두고 있다. 타 지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모습이 아닌, 지방에서 보이는 지역적인 특징을 나타내는 건축 기법으로 민가 유형 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된다. 또 대청마루의 후벽은 판벽에 두툼한 문틀을 만들었고, 머름대 위에 판문을 단 바라지창은 문고리를 인방에 걸도록 되어 있는데 이 집은 빗장둔테로 만들어 매우 투박하면서도 조형적인 양감이 두드러진 멋을 보여준다. 방 안은 고미반자의 천장으로 만들어 고급스러운 기법으로 마무리하였다. 특히 벽의 위쪽에 띠살무늬 외닫이문을 좌우 대칭으로 달고 그 아래에는 통나무 수직계단을 만들어 별도의 계단에 따른 실내 공간의 축소를 줄이는 기법을 사용하였다. 이 다락은 장인의 특별한 기술이 발휘된 모습으로, 중요한 물건을 올려놓는 수장고의 역할을 하고 있다.

건넌방 날개채 끝의 외양간 옆에 부엌을 두고, 부엌에는 건넌방과 만나는 문을 달았다. 밖으로도 문을 달아 디딜 방아 간과 우물가로 나가는 문을 만들어 놓았다. 이 집의 중심 부엌은 건넌방 아래의 부엌이며, 이것이 음식을 만드는 부엌으로 되어 있고 여기에 그릇을 얹어 놓았던 선반이 꾸며져 있다. 방이나 대청 등 곳곳에 선반을 달아 가사 도구를 올려놓는 용도로 사용 하고 이다.

△종손 및 종택 관리

용암 종택의 10대 후손 김지순 씨( 70세)는 중앙정부 공무원으로 30년 근무 후 서울에서 현대적 생활방식으로 살아가고 있고, 종택 은 최병인 (50세), 박수정 (47세) 마을 이장 부부가 관리하며 종택을 이용한 체험 프로그램 (팜스테이 보리말 체험교실)을 개발해 해마다 신청 관광객들의 수가 늘어 난다고 한다.

△찾아가는길

영덕군 창수면 인량리는 동서 4축 고속도로 영덕 나들목에서 내려 7번 국도 울진 방향으로 약 20분을 달려 영해 송천 교차로에서 내린다. 추수가 끝난 영해 벌영들, 원구들이 보이는 918번 지방도 영양 방향으로 5분 정도 가다 보면 영해면 원구리에서 인량리 마을 진입로가 나온다. 마을은 학이 날개를 펼친 형상이라 해서 나래 골, 익동, 비개동으로 불리고 어진 사람이 많이 배출 됐다 고 해서 인량 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영덕군 창수면 인량리 500여 년의 오랜 역사와 전통이 살아 숨 쉬며 국가지정문화재 영덕 충효당 종택 과 갈암 종택 외 8개의 경상북도 지정문화재가 있고 여러 성씨 들의 종가(8종가 12종택)기 한 마을을 이루고 있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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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용암종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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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길동 기자

    • 최길동 기자
  • 영덕 담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