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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가락에 대하여

박언숙 등록일 2017년02월09일 15시32분  

보도블록 위를 알짱거리는
비둘기 발가락을 무심코 본 후로
종종 걸음 멈추고 안쓰럽게 세는 버릇
발가락 하나가 잘리고 없는 놈
그나마 둘 달린 놈
드물지만 한 쪽 발가락을 다 잘리고
뒤뚱거려서 애가 쓰이는 녀석도 보인다
배고픈 날 서대구공단 야적장을 뒤진 모양이다

명줄만큼 질긴 나일론실에 걸렸을 것이고
올가미에 졸려서 질식된 발가락이 말라서 떨어진다
작두에 잘린 할머니 집게손가락이 보인다

겨울이면 그 손가락이 시려 콧김 호호 쐬면서
손발이 성해야 벌어먹기가 수월하다는 넋두리
잠금장치에 갇혀 군말 없던 내 발가락들
곰팡내로 밀폐된 독방살이를 이젠 알겠다

밥벌이에 골몰해 손발가락 내줄 뻔했던 일
바쁜 걸음 멈추고 비둘기 발가락을 보다가
내 손발의 품삯이 얼마나 송구스럽던지
꼼지락거리며 엎드려 경건하게 아는 체해 본다



<감상> 새끼손가락 끝이 종이에 베이고 난 후에야 그 손가락을 발견하게 됐다. 숟가락을 들 때도 젓가락질을 할 때도 글씨를 쓸 때도 컴퓨터 자판을 두드릴 때도 나는 새끼손가락을 안 쓴다. 그런데 어느 순간 그것이 제 존재를 잊지 말라고 항의라도 하듯 불쑥 고개를 내밀곤 하는 것이다. 저 없이는 손이 완성되지 못한다는 것을 알게라도 하려는 듯  어쩌다 제 기능을 멈춰버리는 것이다. 그럴 때에야 발견하게 되는 새끼손가락. (시인 최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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