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4월 전북 익산에서 웃지 못할 사건이 있었다. 30대 청년 둘이 한 아파트 정문 앞 화단에 서 있던 우체통을 훔쳐 달아났다. 청년들은 동업하는 프랜차이즈 음식점의 인테리어에 사용하기 위해 빨간 우체통을 훔친 것이었다. 별 사건 아니라 생각하겠지만 이는 아날로그 시대의 종언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사람과 사람이 마음 속의 감정을 손글씨로 적어서 전달하는 소통 방식이 사라지고 있다. 정보통신기술이 발달하면서 우리 주위의 사건 사고는 물론 지구 반대편에서 벌어진 일들까지 거의 실시간으로 중계되는 시대가 됐다. 사람들은 트위터나 페이스북 등 다양한 SNS(사회관계망)를 통해 필요한 정보를 곧바로 주고 받는다. 그 과정에 깊은 사고는 거추장스러운 사치에 지나지 않는다. 축약되고 휘발성이 강할수록 좋다. ‘그리움’이라는 단어도 곧 사어가 되겠다 싶을 정도다. 그야말로 속도가 지배하는 사회에 살고 있다.

“해질 무렵 거리에 나가 차를 마시면/ 내 가슴에 아름다운 냇물이 흐르네/ 이별이란 헤어짐이 아니었구나/ 추억 속에서 다시 만나는 그대// 베고니아 화분이 놓인 우체국 계단/ 어딘가에 엽서를 쓰던 그녀의 고운 손/ 그 언제쯤 나를 볼까 마음이 서두네/ 나의 사랑을 가져가 버린 그대(…)” 이제 더 이상 조용필의 노랫말 속 소녀는 찾아 볼 수 없는 시대다. 그저 여행지에서 추억 만들기 느린 우체통에 몇 자 긁적여 넣는 것이 고작이다.

이런 세태를 반영하듯 전국에 빨간 우체통이 빠르게 사라지고 있다. 우정사업본부는 지난해까지 전국에 우체통이 1만4천26개 남아 있다고 했다. 대구와 경북에는 지난해까지 우체통 1천591개, 우체국 452곳이 남아 있다. 2년 전인 2014년에는 1천823개, 464곳이었는데 빠르게 줄고 있다. 우정사업본부는 해마다 4, 5월에 우체통을 정비한다. 3개월 간 우편물이 한 통도 들지 않으면 빨간 우체통은 철거되는 운명을 맞는다.

우체통은 바쁘게 돌아가는 디지털 사회에 기다림의 의미를 되새겨 준다. 아파트 앞 길모퉁이의 빨간 우체통이 사라지지 않게 오늘 밤 그리운 사람에게 펜을 꼭꼭 눌러 손편지 한 통 써보면 어떨까.


저작권자 © 경북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