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게 유행한 대사는 아닙니다만 최근에 저에게 큰 울림을 준 영화 대사는 “나이가 들어서는 규칙을 위해서 죽는다”(일대종사)와 “지금 (사랑을) 만나러 갑니다”(지금 만나러 갑니다)였습니다. 무협과 멜로라는 전혀 다른 장르의 영화였지만 제게는 둘 다 꼭 필요한 윤리 교과서로 읽혔습니다. 저의 기술적, 실천적, 해방적 관심에 골고루 응답을 주는 영화들이었습니다(이 글을 쓰고 있는데 TV에서 ‘지금 만나러 갑니다’가 우리나라 영화로 다시 만들어진다는 소식을 전하는군요). 나이 들어서는 “규칙을 위해서 죽는다”라는 말을, 하등의 망설임도 없이, 그저 자연스럽게, 내뱉을 수 있어야 합니다. 또, 자기를 버리고 사랑을 만나는 일에 항상 적극적이어야 합니다. 그래야 제대로 늙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일신의 이득과 세대의 존재감을 위해 시대착오적인 ‘질서(秩序)’를 무턱대고 고수하려는 것은 어른들의 ‘규칙 지키기’가 아닙니다. 아무리 실존적, 역사적 상처가 크다고 하더라도 그런 묵수(墨守·묵자가 성을 굳게 지켰다는 고사에서 유래한 말. 제 의견이나 생각 또는 옛 습관을 굳게 지킴)는 존중받을 수 없습니다. 아무것도 모를 때부터 약육강식의 정글로 내몰렸던 것이 우리 전후 출생 세대, 베이비붐 세대들입니다. 생존 경쟁의 ‘무한 도전’을 생활의 미덕으로 알고 자랐습니다. 돈도 악착같이 벌었고, 운동도 목숨을 걸고 했습니다. 그러나 이제 시대가 바뀌었습니다. 선한 목적도 다 때가 있는 것입니다. 산업화의 역군이든 민주화의 선봉이든 이제는 시절 인연과의 작별을 도모해야 할 때입니다. 야만의 시대를 개명(開明·사람의 지혜가 열리고 문화가 발달함)의 세상으로 인도한 것으로 이제 우리의 소임은 끝이 났습니다. 오직 우리 안에 남은 야만을 밖으로 내몰 일만 남았습니다. 미래는 미래를 담당할 이들에게 맡겨야 합니다.
역사가 강요한 야만을 벗어나는 길은 스스로 윤리 교과서를 끊임없이 외우는 길밖에 없습니다. 오직 각자도생(各自圖生·제각기 살 길을 도모함)입니다. 그 노력을 한시라도 게을리하면 순식간에 짐승으로 떨어집니다. 나이 들면 사랑과 규칙을 위해 목숨을 걸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