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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자] 74. 제천 탁사정(濯斯亭)

기암절벽에 부서지는 강물 보며 세상 시름 훌훌

김동완 여행작가 등록일 2017년06월29일 18시38분  

▲ 탁사정은 정조때 제주목사를 지낸 임응룡이 소요하던 곳에 후손 임윤근이 중수했다.
탁사정은 충북 제천에서 국도 5호선을 타고 강원도 원주로 넘어가다 용암천변 깎아지른 듯한 절벽 위에 있다. 제천시 봉양읍 구학리다. 구학산과 감악산이 갈라지면서 궁골이라는 골짜기가 생겼는데 그 골짜기를 흐르는 계곡이 용암천이다. 이곳에서는 구학천이라고 한다.구학천과 구학리는 구학산 전설의 지배를 받는다. 구학산에는 아홉 마리의 학이 살았는데 학이 사방으로 날아가 봉양의 구학리, 충북 영동의 황학동, 백운면의 방학리와 운학리 등 지명의 유래가 됐다고 한다. 구학천 이름도 여기서 비롯됐다. 구학천이 흐르는 천변에는 탁사정과 탁사정 유원지, 조백석골, 천주교 배론 성지 용대암등이 이어진다.

탁사정명은 맹자의 청사탁영 탁사탁족에서 빌렸다.
탁사정은 용암천의 남쪽 절벽 위에 까마득히 서있다. 절벽은 마치 도끼로 장작을 내려친 것처럼 매끈하게 수직으로 솟아 올라 있다. 그 절벽 끝에 정자가 있으나 아래쪽에서는 우거진 숲에 가려 볼 수 없다. 나무로 만들어진 계단을 숨 가쁘게 올라서면 능선이 나오고 능선의 오른쪽에 탁사정이 보인다. 탁사정은 본래 옥호정(玉壺亭)이 있던 자리다. 1568년(선조1) 제주수사(濟州水使)이던 임응룡(任應龍1523~1586)이 고향으로 돌아올 때 해송 8그루를 가져와 심었고 그의 아들 희운이 정자를 지어 팔송정(八松亭)이라고 이름했다. 임운룡은 1556년(명종 11) 무과에 급제하여 전라도 병마절도사, 제주 목사 등을 역임했다. 임응룡의 벼슬이 제주수사라는 기록과 제주목사라는 기록이 엇갈린다. 팔송정은 옥파 원규상이 탁사정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탁영정에서 본 탁영정 일대
원규상은 일본의 침략이 노골화 되던 시기에 봉양면장을 지낸 선비로 단발령 이후 유인석을 대장으로 하는 호좌의진이 출범할 때 전투부대의 하나인 좌군을 이끌었던 좌군장이다. 제천에서 활동한 그는 ‘제천향약’을 시행하며 일진회의 발호를 막았다.탁사정 안에는 탁정정기와 시판이 걸려있으나 현판의 제작시기는 정확하게 알 수 없다.다만 탁사정기를 쓴 이병선과 탁사정으로 정자의 이름을 바꾼 원규상이 이병선에 이어 봉양면장을 맡은 점 등으로 미루어 한일한방 이전에 제작됐을 가능성이 높다. 6·25 전쟁때 불탔다가 1957년 재건했다. 2007년 제천 10경 정비 사업의 하나로 보수됐다. 탁사정은 제천 9경이다. 정면2칸, 측면 2칸의 겹처마 팔작지붕 구조다. 내부 바닥은 우물마루를 깔았으며 4면에는 한자 높이 정도의 머름 난간을 둘렀다.

탁사정은 구학산 산기슭 용암천 절벽에 다리잡고 있다.
창농(임희운)이 탁사정을 새로 새우니 滄儂新起濯斯亭
선비들의 노래소리 이제 다시듣게 되었네 儒子曰歌今復聽
옛 굴에서 용을 찾으니 그 기운은 물속에 담겨있고 古窟尋龍涵水氣
먼 산에서 학을 불러 선령의 시중을 보살피게하네 遠山招鶴候仙靈
꾸미고 칠을 하는데 천금의 공력이 들었고 墍塗竣飾千金力
명실공히 아름다운 향기가 백세에 전하리라 名實遺芳百世馨
오래된 석벽 삼봉은 하늘가를 떠받치고 老石三峰天畔擎
연민에 빠져 세상 밖의 길을 잊을 형국이네 偏憐世外甬忘形

- 이병선의 시 ‘탁사정’

탁사정의 ‘탁사濯斯’는 《맹자》〈진심장구〉에 나오는 “너희들은 저 노래를 잘 들어라. 같은 내에 흐르는 물이라도 그것이 맑으면 갓끈을 빨고 그것이 흐리면 발을 씻겠다고 한다. 이것은 물 스스로 그런 사태를 가져온 것이다. 小子聽之 淸斯濯纓 濁斯濯足矣 自取之也”에서 빌려왔다. ‘탁사’ 철학은 굴원의 ‘어부사’에서 “창랑의 물이 맑으면 갓끈을 씻고 물이 더러우면 발을 씻는다.”는 탁영탁족(濯纓濯足)으로 인용된다.

용암천에서 본 탁영대와 절벽 숲에 가려 보이지 않는다.
초나라의 충신 굴원은 간신의 모함을 받아 벼슬에서 쫓겨난다. 어느날 강가를 거닐며 시를 읊는데 굴원을 알아본 어부가 왜 이렇게 사느냐고 묻는다. 굴원은 “온 세상이 흐려 있는데 나 혼자 맑고, 모두 취해 있는데 나만 혼자 깨어있다”고 말했다. 그러자 어부는 “성인은 사물에 막히거나 걸리지 않아 세상과 함께 잘도 옮아가니 세상 사람이 다 흙탕물에 뒹굴고 있거늘 마땅 그 흙탕물을 휘저어 남처럼 함께 뒤집어 쓸 것이며 모든 이가 취해있으면 그 술찌꺼기를 함께 씹으면서 말술을 들이 마시면 될일이지 혼자 고고한 척하여 추방을 당하는가”라고 탄식했다. 굴원이 다시 말하기를 “머리를 새로 감은 자는 반드시 관을 털고 몸을 새로 씻은 자는 반드시 옷을 턴다고 했으니 차라리 상강으로 달려가 물고기의 뱃속에 장사를 지낼지언정 어찌 희고 흰 결백한 것으로써 세속의 티끌과 먼지를 뒤집어 쓸 수 있겠는가” 그러자 어부는 배를 저어 떠나며 이렇게 노래했다. “ 창랑의 물이 맑거든 갓끈을 씻고 창랑의 물이 더러우면 발을 씻으리라”

탁사정 유원지 주차장에서 차를 세우고 10분 정도 나무 계단을 오르면 탁사정이 나온다.
‘탁사’의 의미는 행,불행은 남이 그렇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자기 처신과 행동, 마음먹기에 달렸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여기서 ‘창랑자취 ’라는 말이 생겨났는데 ‘좋은 말을 듣거나 나쁜 말을 듣는 것은 다 제할 탓’이라는 뜻이다. 다른 뜻도 있다. 창랑의 물이 맑다는 것은 도의와 정의가 살아있는 세상이고 물이 더럽다는 것은 정의가 무너진 어지러운 세상이라는 뜻이다. 갓끈을 씻는 다는 것은 세상에 나아가 뜻을 펼친다는 말이고 발을 씻는다는 것은 어지러운 세상을 떠나 은둔한다는 말이다.

‘탁사’ ‘탁영’ ‘창랑’라는 이름의 정자와 대는 모두 여기서 나왔다. 탁사정은 제천 말고도 나주시 남평읍 남석리에 있다 ‘탁영’은 따온 곳으로는 경북 영양 서석지에 있는 바위 ‘탁영석’과 경주 안강읍 이언적의 별서인 독락당 앞 계곡 바위 ‘탁영대’가 있다. 또 퇴계 이황의 도산 경관에도 ‘탁영담’이 있다. ‘창랑’은 강릉시 저동의 창랑정, 철원군 정연리에 창랑정이 있다.

숲속 나무에서 쓰르라미 떠나가고
누각에는 흰달이 걸려 있네
섬은 평생 먼 곳에서만 감상하였으나
지금 난간에서 아득히 홀로 잠이 드네
깊은 생각을 많이 하니 마음을 깨끗해지고
두 물줄기는 밝은 빛을 받아 아름답다
모래 가에서 나지막하게 들리는 말소리는
밀물배가 올라온다는 것을 알게 하네

- 윤봉조 의 시 ‘탁사정달밤’

포암 윤봉조는 1705년에 문과에 급제한뒤 이조 참의를 지냈고 대제학에 제수됐으나 사양하고 다른사람을 추천했다. 문장이 뛰어났으며 ‘포암집’을 냈다. 윤봉조가 달밤에 탁사정에 올랐다. 바위 절벽에 부딪히는 강물이 파도소리처럼 들렸던 모양이다. 절벽위에 우뚝 선 정자는 섬처럼 느껴졌을 테고 그러니 정자아래서 두런두런 들리는 사람소리는 밀물배를 타고 온 사람들이 배를 정박하면서 내는 말소리 같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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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 사진 / 김동완 여행작가
정자 위에서 내려다본 용암천은 눈이 부시게 맑고 푸르다. 계곡이 옥호정의 옛이름 그대로 ‘옥으로 만든 호리병’처럼 생겼다. 강 건너편에 보이는 기암절벽과 오래 묵은 나무들, 탁사정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는 산 봉우리가 신비롭다. 정자는 외로운 섬처럼 고고하다. 그렇더라도 2017년 탁사정 풍경은 윤봉조가 읊었던 그 탁사정과는 판이하게 다른 풍경이다.제천의 유일한 자연 유원지인 탁사정은 무질서하게 들어선 음식점과 계곡 쪽으로 발을 뻗어나간 평상등의 무허가 건축물로 이맛살을 찌푸리게 한다. 본격적인 피서철이 오면 혼란은 더욱 가중 될 것이 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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