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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용섭의 신삼국유사] 58. 백제에 관한 남은 이야기

백제, 중국의 동부지방 수년간 다스렸다

윤용섭 전 한국국학진흥원 부원장 등록일 2018년03월29일 21시46분  
소흥의 수로
나당연합군의 공격과 예식진의 배신에 의하여 백제는 멸망했다. 왜가 구원병을 보내고 복원운동이 치열하게 전개되었지만, 모두 실패로 돌아가고 만다.

그런데 삼국유사에 나오지 않지만, 이 대목에서 백제의 해외진출에 관하여 잠깐 살피는 것도 의미 있다고 생각한다. 최근의 연구조사 성과가 있기 때문이다. 흔히 근초고왕 시절 백제는 중국대륙에 진출하였다 한다. 교과서에는 백제가 전성기의 한 때, 요서지방에 진출하였다며 애매하게 적고 있다. 그러나 중국의 역사서는 다르게 표현한다.

중국의 송서(宋書),양서(梁書),남제서(南齊書),북제서(北齊書),남사(南史),북사(北史),구당서(舊唐書),신당서(新唐書),양직공도(梁職貢圖),통전(通典), 흠정만주원류고(欽定滿洲源流考) 등에 백제가 중국의 동부지방을 다스린 사실을 기록하고 있다. 이 여러 사서가 위서가 아니라면, 백제의 대륙경영은 역사적 사실이다. 그러면 이 가운데 몇몇을 살펴보기로 한다.
광서장족자치구 옹정현 지방세무국 백제세무국

먼저 '남제서' 백제전에는, 구려(고구려)가 이미 요동을 다스리자 백제 역시 요서?진평을 점령하여 스스로 백제군을 설치하였다고 기록하였으며, ??신당서??와 ??구당서??에는 백제의 서쪽 경계를 월주(越州)라 한다. 월주는 월나라가 있던 곳으로 지금의 중국 절강성 소흥(紹興)이다. ??남제서』와 『자치통감』에 의하면, 488년과 490년에 백제가 북위(北魏)의 침략을 받자 싸워 크게 이겼다는 기록이 있다. 488년의 전쟁이 기록되어야 하는 『남제서』의 앞부분은 누군가 없앴으며, 490년도의 전쟁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이 적혀 있다.

“이 해(490년)에 위군(魏軍)이 다시 수십만의 기병들로 백제의 지경을 공격했다. 백제 모대(牟大), 즉 동성왕(東城王, 재위 : 479년~501년, 성은 부여(扶餘), 이름은 모대)은 장군 사법명, 찬수류, 해례곤, 목간나 등 4명으로 하여금 위군을 습격하여 크게 격파했다. 남북조시대 당시 중국의 북부를 차지한 북위와 백제가 한반도 안에서 싸웠을 리 없다. 북위의 수십만의 기병이 황해를 건널 수도 없고 고구려를 통과할 수도 없는 것이다. 백제의 동성왕은 이 전투에서 공로를 세운 장군들을 광양태수, 청하태수, 광릉태수, 성양태수로 봉했다. 모두 중국의 지명이다. 이 사실은 ??삼국사기??에도 있다. “위나라가 군사를 보내 우리(백제)를 공격하다가 우리 군사에게 패배하였다(?백제본기?). 북위는 남제와 백제의 공동의 적이었으므, 이 전쟁을 ??남제서??에 기록한 것이다. 그리고 또 양나라 무제 때 만들어진 ‘양직공도’에도 백제가 요서(遼西)와 진평군(晉平郡)을 경영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송서 지리지에 올림군에 진평군이 있었다는 기록이 있는데, 이곳은 지금의 광서장족자치구(廣西壯族自治區) 옹녕현(邕寧縣)이다. 옹녕현에는 현재 백제향(百濟鄕)이라는 지명이 있고 백제향 안에는 백제허(百濟墟)가 있다. 특히, 원광대 소진철 교수에 의하면, 백제부흥운동을 벌였고 당나라에서도 활약한 흑치상지의 탄생지가 이곳이라는 것이다.

이처럼 백제는 당대의 해상강국으로서 중국의 하북(河北), 산동(山東), 강소(江蘇), 절강(浙江) 지역을 수백 년간 차지하였다. 최치원도 당나라의 태사시중(太師侍中)에게 올린 글에, 고구려와 백제는 전성기에 강병(强兵)이 100만으로, 남으로는 오·월을 침공하고 북으로는 유·연·제·노(幽·燕·濟·魯)를 흔들었다고 하였다[高麗百濟 全盛之時 强兵百萬 南侵吳越 北撓幽燕齊魯 爲中國巨?(려)].

이상의 기록과 사실은 믿기지 않을 정도로 우리의 역사 지식과 어긋난다. 그렇지만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우리의 역사를 깊이 연구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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