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마저 초월한 충절…고고한 선비의 절개를 만나다
권산해는 조선 전기의 의인(義人)이다. 세조 원년(1455) 수양대군이 단종의 왕위를 빼앗자 두 임금 섬기기를 거부하며 낙향했다. 그 뒤 사육신과 더불어 단종의 복위를 꾀하다가 뜻을 이루지 못하고 순절했다.
앞면 5칸·옆면 1칸 반 크기의 강당을 비롯하여 5동의 건물로 1곽을 이루고 있고, 죽림 권산해의 위패를 모시고 있다.
그리고 1791년 정조 임금이 수원을 거쳐 영월 단종릉으로 거동할 때, 경기·충청·경상 3도 선비 2천여 명이 그 길목에서 청해 충신으로 정려됐다. 정충각(旌忠閣)을 지보면 대죽리에 세웠다가 1862년에 무덤 옆으로 옮겨졌고, 1956년에 신도비가 세워졌다. 또 1791년 이조참판에 이어 1884년 이조판서로 추증되고 시호(諡號)를 충민(忠愍)이라 했다.
한편 권산해를 제향하는 노봉서원(魯峯書院)은 1794년 권산해를 추모하기 위해 건립하였으나 1866년 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으로 훼철됐다. 이후 1921년 안동의 도산서원의 통문으로 병산서원, 호계서원, 역동서원과 경북도내 사림의 여러 문중에 의하여 동년 3월 18일 재건돼 현재에 이르렀다. 지금 몽양재(蒙養齋) 건척재(建陽齋) 상이당(尙彛堂)이란 현판을 가진 12.8m×3.6m의 강당을 비롯하여 6.65m×3.4m의 숭의사(崇義祠), 6.9m×2.15m의 정문 6.1m×2.2m의 신도문 등 총 32평 5동의 아담한 건축을 갖춘 이 서원은 내신리의 안동권씨 종중에서 춘추로 향사를 지내고 있다. 노봉서원이란 이름은 노산군(단종)을 숭상한다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