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어를 부르는 이름은 여러 가지다. 값이 싼데다 맛도 좋고 영양가가 풍부해서 일반인들이 많이 먹었기 때문일 것이다. 옛날에는 가난한 선비를 먹여 살린다 해서 '비유어(肥儒魚)'라 했다. 경북 동해안에서는 '눈검쟁이', '푸주치' 혹은 '등어'라 부르기도 했다. 전남에서는 청어를 '고심청어'라 했고, 서울사람들은 알을 품은 씨알 굵은 청어를 '구구대'라 불렀다. 또 다르게는 '비웃'이라 했다.

청어는 가난한 선비나 서민의 식탁만 풍요롭게 한 것이 아니었다. 나라 구한 이순신 장군은 청어로 군량을 조달했다. '난중일기' 선조 28년(1595) 12월4일 자에는 휘하의 장수가 청어 7천여 급(級)을 싣고 와서 쌀과 바꿨다는 일화가 나온다. 1급은 스무 마리니 전체 마리수가 14만 마리나 된다. 조선시대 자급자족 군대에 큰 보탬이 됐을 것이다. 허균의 산문집 '성소부고'에는 북도산 청어는 크고 속이 희며, 경상도산은 껍질이 검고 속이 붉다고 했다.

이처럼 흔했던 청어가 10여 년 전까지만 해도 잘 잡히지 않아서 포항사람들이 옛날부터 만들어 오던 청어 과메기도 맛보기 힘들었다. 청어 생산량은 지난 2005년 전까지만 해도 연평균 5천t 안팎에 불과했다. 그러던 것이 지난 2009년부터 지난해까지 5년간 연평균 생산량이 3만t 정도로 그전에 비해 6배 정도 늘었다.

이렇다보니 과메기의 본고장인 포항과 영덕 등 경북 동해안 지역에 원조 과메기인 '청어 과메기'가 부활하고 있다. 청어의 눈을 꿰 말린다고 해서 '관목어(貫目魚)'라 했는데, 이것이 '과메기'의 어원이고 보면 '원조 과메기'의 생산이 느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청어 생산량이 줄면서 지난 1960년대부터 청어 대신 꽁치를 말려서 과메기라 해왔는데 원조 청어의 반격이 시작된 것이다.

꽁치 과메기도 통마리와 자반 과메기 맛이 다르듯이 청어 과메기 맛도 딴맛이다. 소주에 살집이 두툼하고 구수한 청어 과메기 안주는 일품이다. 살 깊은 청어 과메기는 얼었다 녹았다해야 제대로 말릴 수 있는데 벌써부터 주당들의 군침 삼키는 소리가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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