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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도청시대, 낙동강을 가다- (3) 낙동강 원류, 양백지천

백두대간 등줄기 사이사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 '생명의 젖줄'

김정모 서울취재본부장 kjm@kyongbuk.co.kr 등록일 2015년02월26일 20시49분  
낙동강 원류의 물은 봉화를 거쳐 안동으로 흐르고 있다. 사진은 봉화 청량산 앞 빙벽. 사진작가 권영목

명호면 도천리서 운곡천과 만나 두 내가 합수하며 물길 힘 얻어 '낙동강 시발지'란 표지석 선명

태백 구문소에서 도산서원까지 산과 내의 오묘한 조화 그 자체 동화의 나라 들어선 착각마저

낙동강의 발원 강원도 태백 황지천은 철암천을 만나 신비스러운 구문소를 만들고 길고 긴 남행길에 나선다. 백두대간 등줄기 사이를 비집고 넘어와 봉화군 석포에서 낙동강 8백여 개 지류 중 첫 번째로 송정리천을 만난다. 송정리천을 거슬러 올라가면 열목어 서식지 백천계곡이다. 이어 소천면에서 발원한 회룡천과 현동천 그리고 덕신천, 재산천을 만나고 또 만난다. 낙동강 원류의 샛내들과의 조우는 험준한 협곡에서 아무조건 없이 부둥켜안는다. 인간사회의 만남과는 달리 경계도 낯가림도 따짐도 없다. 강변 산에는 궁궐 재목으로 쓰이는 소나무(금강송)와 자작나무가 하늘로 치솟아 자라고 있다. 대장부의 기세가 저런 것이 아닌가. 묘령의 아가씨 살갗같이 흰 자작은 고대 신목(神木)으로 쓰였다는데 신비스럽게 보인다.

승부에서 분천역간 낙동강변. 봉화군청 제공

강물은 다시 굽이치며 남쪽으로 내달리다 명호면 도천리에서 춘양에서 흘러나오는 운곡천과 만난다. 두 내가 합수(合水)하면서 물길이 힘을 받기 시작한다. 이곳 이름은 이나리 강. 두개의 나리(川)가 만난다는 뜻이거나 두개의 나루터가 있었다고 하지만 정명(正名)으로선 어색하다. '두내' '두물'이거나 이를 한자로 표기한 양수(兩水)이던지, 아니면 '두나루'를 한자로 표기한 '이진(二津)'이든지 해야 할 터인데. 봉화군은 그곳에 '낙동강시발지'란 표석을 세웠다.

물길 따라 철길이 나 있다. 태백시에서부터 물길과 길동무라도 하듯이 나란히 동행하던 철길은 소천면 임기리에서 그 길을 달리하며 헤어진다. 영주역을 목표로 춘양역으로 서행(西行)해서다. 영동선(강릉~영주)은 백두대간을 넘어오며 태백시 동점역을 지나 봉화 땅에 들어와 석포 승부 양원 분천 현동 임기 여섯역을 지나며 산천에 경적을 울리고 사람을 태우고 내린다.

승부역앞 하천.

인적이 드문 작은 기차 정거장 승부역에는 영암선(영주~철암 87㎞) 개통에 즈음하여 세운 이승만 대통령의 친필 기념비가 외로이 서있다. 2013년 국가지정 철도문화재로 등록됐다. 1949년 봄에 착공, 1955년 말에 준공한 철로에는 부족한 물자로 6·25전쟁 시기에 우리 손으로 건설됐다는 자부심이 묻어있다. 공사 구간 중 험난한 산악 지형을 극복해야만했던 승부역 구간은 '한강의 기적'을 잉태하는 예고편이었던 것이다.

작지만 강다운 꼴을 갖춘 이나리강은 얼마 전부터 여름철 특수산업을 낳았다. 이나리강에서 출발, 청량산도립공원 입구까지 10㎞에 달하는 래프팅 코스를 즐기는 여행객이 몰려온다. 물살이 빨라서 래프팅 재미가 쏠쏠하다. 계곡 양쪽 산에서 불어오는 신선한 공기는 도시에서 오염된 폐를 청량하게 씻어준다. 도천리 매호유원지는 매화꽃이 떨어지는 형국이라 하여 '매호'라는 이름대로 수려하다. 물길은 매호에서 한 5㎞남짓 내려가 잔잔한 유수로 점잖은 자태를 뽐내는 백룡담을 만든다. 청량산 절벽이 병풍처럼 둘러쳐있다. 초록의 강물에 절벽이 비치어 명경지수다. 산중에 숨은 작은 호수다.

분천역에서 철암역까지 철도청에서 운행하는 관광열차인 백두대간 협곡 열차(V-train)도 낙동강 원류의 새로운 풍경이다. 이 역시 두메 산촌 봉화 동부지역의 경기를 살리는데 한 몫 한다. 관광객들에 의해 봉화산 농산물이 꽤 팔려나간다. 분천역 난전에서 산 산골 강낭(옥수수) 맛이 담백하고 고소하다. 열차는 천장을 제외하고 대부분이 유리로 돼있고, 창문도 개방형이어서 이색적이다. 때 마침 붉은색의 세 량 기차가 지나간다. 이 구간에는 교통편이라곤 오직 기차밖에 없는 천연 그대로다. 오지속의 비경을 보노라면 마치 스위스 알프스에 온듯한 느낌이 든다. 승부~분천 구간의 기차길은 트레킹 코스로 인기를 얻고 있다. 분천역은 스위스의 알프스산맥 최고의 청정마을에 있는 체르마트역과 지난 2013년 자매결연을 맺고 나서 '체르마트 길'이라 불린다.

강물은 백두대간 오지의 산하를 구불구불 돌고 돌며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태백 구문소에서 안동 도산서원까지 낙동강 원류 곳곳은 산과 내의 오묘한 조화 그 자체다. 모양은 구절양장(九折羊腸), 수질은 옥류수(玉溜水)다. 나무꾼과 선녀가 나올 것 같은 환상에 빠진다. 동화의 나라에 들어선 것 같은 느낌이다. 낯선 공간 초행길임에도 편안한 감이 온몸을 감싼다. 세파에 찌든 마음을 하얗게 씻고 싶은 사람은 이곳으로 가면 마음의 자유와 치유를 받을 수 있다. 낙동강 원류를 보기 전에는 누가 계곡천을 말할 수 있으랴. 유네스코 자연유산에 등재를 신청할 만하지 않은가.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Time)'이 '아시아에서 가장 아름다운 길'이라는 찬사를 한 홍콩의 드래곤스 백 트레일 못지않다. 유럽의 세느강 라인강 세비야강 똘레도강, 호주의 브리즈번, 뉴욕의 허드슨 강 어디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다. 이곳의 비경을 보지 못했을 '타임(Time)'에 기고를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문득 든다.

옥에도 티가 있을 수 있어서인가. 비경을 시샘하는 신선의 장난이 아니다. 비경에 흠을 내는 인위적인 작용때문이다. 석포면에 보란 듯이 자리 잡은 아연공장은 누가 봐도 눈에 거슬린다. 1970년에 완공한 (주)영풍 석포제련소. 태백시의 농공단지와 2017년 개통예정인 봉화~울진간 국도 공사도 그렇다. 이 국도가 개통되면 천혜의 비경을 한눈에 조망할 수 없고 자동차 공해가 덧칠될 것이 뻔하다. 유럽의 지붕이라고 불리는 스위스 융푸라우는 산악열차 외에는 별로 개발한 것이 없다는 점을 타산지석으로 삼아야한다. 백두대간수목원이나 3대문화권사업도 자연을 훼손하지 않고 보존하는 것을 목표로 천천히 조심스럽게 개발해야 마땅하다.

경상도의 지붕 백두대간과 낙동정맥의 품안에 살며시 들어앉은 곳, 하늘이 준 태백산과 소백산의 양백지천(兩白之川), 경상도의 하늘아래 첫 고을에서 용틀임하며 흐르는 낙동강 원류를 보존해야 함은 낙동강에 기대어 사는 우리들 모두의 지엄한 의무다. 보존이라기보다는 수호다. 그것은 생명의 뿌리이자 경상도 미래 경영의 원천이다. 생산의 원천이 물이다.

강물 따라 가는데 혼이 빠져 나 다니다 보니 새벽에 나선 하루가 벌써 저문다. 멀리 산넘어 재위로 한 점 구름이 걸려 있고, 붉은 석양(夕陽)이 매호(梅湖) 산마루에 걸려있다. 바람도 한수 읊어 지나가고 싶은지 소리친다. 한 폭의 산수화 속을 거니는 감흥을 맛본다. 자연은 이토록 숭고한데 인간사회는 왜 이리 악이 승하는 무질서 상태인가! 14세기 말 고려조 충신이자 성리학자인 목은 이색의 우국가(憂國歌)가 떠오른다.

백설(白雪)이 자아진 골에 구루미 머흐레라 / 반가온 매화(梅花)는 어느 곳에 피엿는고 / 석양에 홀로 셔 이셔 갈 곳 몰라 하노라.

흰 눈이 녹아 없어진 골짜기에 우글거리는 간신의 무리를 구름으로, 눈비비고 봐도 찾기 어려운 우국지사를 매화로, 기울어 가는 왕조의 운명을 석양으로 표현하며…. 6백여 년 전의 지사가 우국(憂國)해야만 하는 현실이 21세기 초엽 이 시대에도 유사하다고 한다면 지나친 비관일까.

강이 사람의 마음을 모르는지 사람이 강의 물리(物理)를 모르는지…. 상념에 젖은 순간에도 아라리 가락처럼 이어지는 낙동강 원류의 물은 봉화 땅을 빠져나와 안동시 도산면 가송리로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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