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주시, 중국 겨냥 최치원 프로젝트 시동

▲ 경주시 배반동에 위치한 신라의 학자 최치원이 학문을 닦던 곳 독서당.
▲ 독서당 담장 밖에 있는 최치원 유허비 비각.
한·중 우호관 등 테마타운 조성
산재한 관련 문화유산 연결
'전국 트레일' 사업도 동시 추진

'역사문화관광도시' 경주 부각
동북아 관광객 유치 탄력 전망

오랫동안 한국과 중국의 우호관계를 상징하는 인물로 거론돼 온 신라 대표 학자 최치원에 대한 기초자치단체들의 재조명 움직임이 활발하다.

그의 고향인 경주시도 테마타운 조성을 계획하고 있는 등 최치원을 통한 문화교류와 관광객 유치 확대를 기대하고 있다.

오늘날 중국인들은 신라시대의 대유학자이자 문장가로 이름을 날렸던 최치원을 한중문화교류의 시조로 기억하고 있다.

중국으로 건너간 최치원이 5년간 재직했던 양쩌우시에는 당성(唐城) 유적의 핵심부분에 최치원 기념관이 건립돼 있다.

이는 9세기 동아시아 한문학이 정립되는 초석이 돼 한·중·일을 아우르던 대사상가 최치원의 문학적 가치를 중국인들이 인정했기 때문으로 볼 수 있다.

경주에도 독서당, 상서장 등 그의 흔적을 전하는 곳이 현재까지 남아있다.

경주시는 이처럼 중국인들에게 신격화 되고 있는 최치원을 재조명하는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이로 인해 중국은 물론 동북아시아 관광객 유치와 세계 속의 역사문화관광도시를 한층 더 부각시키는 계기를 마련한다는 방침이다.



△ 한·중 우호인물 최치원 테마타운 조성

경주시는 관광객 유치를 위해 '한·중 우호인물 최치원 테마타운' 조성을 계획하고 있다.

테마타운에는 한·중 우호 기념관 건립과 우호 숲을 조성하고, 별도로 최치원의 흔적이 있는 전국 지자체를 연결하는 전국 트레일 사업도 동시에 추진다.

먼저 '최치원 한·중 우호 기념관'은 낭산 인근의 총면적 7만㎡와 10만㎡인 예비지역 2곳에 각각 2천㎡ 규모의 기념관을 건립하고 시비, 동상, 공원조성, 주차장 등을 설치한다는 계획이다.

기념관에는 우호인물 전시관도 마련해 최치원의 시와 그림 등을 전시하고, 특히 최치원의 드라마틱한 생애와 아름다운 시를 화폭에 담는 화가 '왕찐위'의 그림도 전시한다는 방침이다.

또 기념관 입구에 비문을 건립해 최치원의 한시 '범해'(泛海 )를 기록할 예정이다.

이 시는 지난 2013년 박근혜 대통령이 중국 방문 시 시진핑 주석이 인용한 '한국과 중국은 바다에 배를 띄우듯 이야기를 나누면서 출발해야 한다'는 내용의 최치원 한시다.

또 현재 중국 양쩌우시 당성 기념관, 장쑤성 리수이현, 그리고 우리나라 해운대 동백섬에 건립돼 있는 최치원의 동상도 비문과 함께 건립할 예정이다.

최치원이 관직에 있으면서 등청하던 당성(唐城)길 형태로 총 10㎞ 길이의 트레킹길인 한·중 우호 숲도 조성할 계획이다.

한·중 우호 숲은 최치원의 흔적이 남아 있는 상서장에서 옥룡암과 망덕사지, 선덕여왕릉을 거쳐 독서당까지 이어지는 6㎞ 거리의 1구간과, 낭산 독서당 주변 4㎞ 길이의 2구간을 조성한다는 방침이다.

이곳에는 중국 리수이현에 있는 쌍녀분과 연꽃 연못, 전망대, 의자 등 다양한 구경거리를 조성해 관광객들의 관심을 끌기로 했다.

쌍녀분은 억울하게 죽은 두 자매가 묻힌 무덤으로, 최치원이 시를 지어 이들을 위로했다고 한다.

그 후 백성들을 보살피던 목민관의 염원이 서린 영험한 기운이 감돌아 중국인들은 아직도 제사를 지내며 소원을 빌고 복을 기원하고 있다.

이와 함께 경주시는 전국적으로 분포돼 있는 최치원 관련 문화유산을 하나로 묶어 관광상품화하는 '전국 트레일' 사업 추진도 구상하고 있다.

현재 최치원 문화유산은 경주의 상서장과 독서당을 비롯해 마산의 월영대와 고운대, 부산 해운대, 함양의 상림과 학사루, 서산의 부성사, 서천의 도충사, 광주의 지산영당 등이 있다.



△ 경주지역 최치원 흔적

최치원은 12세의 어린 나이에 당나라에 유학해 진사, 현위, 종사관을 지내고 17년 만인 29세에 신라로 돌아온 통일신라시대 최고의 학자였다.

어려서부터 정밀하고 민첩했으며 학문을 좋아했던 최치원은 당에 들어가 스승을 좇아 학문 배우기를 게을리 하지 않아 18세 때 빈공과에 급제해 관리로 나아갔다.

토황소격문을 써서 문장가로서 이름을 떨친 최치원은 헌강왕 11년(885년)에 귀국한 후 진성여왕 8년(894년)에 시무10조를 건의해 아찬이 됐다.

하지만 자신의 개혁안이 받아들여지지 않자 이에 실망하고 은둔했으며 해인사에 들어가 여생을 마쳤다고 한다.

최치원과 관련한 문화유산은 전국적으로 분포하지만 그의 고향인 경주에는 독서당과 상서장, 그리고 숭복사지 등이 남아 있다.

배반네거리에서 포항 방향 굴다리를 지나면 오른쪽에 보이는 낭산 자락에 최치원이 학문을 닦았던 독서당이 있다.

나지막한 언덕바지에 위치한 독서당은 현판 하나 걸려있지 않은 기왓집 건물로 입구에는 안내판만 보일 뿐 별다른 시설물은 눈에 띄지 않아다.

독서당 담장 밖에 있는 비각 속에는 붉은 글자로 '문창후최선생독서당유허비'라고 새겨진 비가 있다.

또다른 최치원 흔적인 상서장은 국립경주박물관 건너 남산 끝자락 산업도로변에 위치해 있다.

경상북도 기념물 제46호인 상서장은 최치원이 894년 진성여왕에게 문란한 기강과 정치를 바로 잡고자 시무10조를 올렸던 곳이라고 전해지는 곳이다.

또 고려 왕건이 장차 신라를 대신해 새로운 왕조를 열 것을 예견하고 왕건을 돕는 글을 올렸던 곳이라고도 한다.

현재의 상서장에는 1970년에 지은 북향의 영정각에 고운의 영정이 모셔져 있으며 상서상 건물에는 상서장화수정기와 화수정 현판, 상서장 중건기, 상서장영정각중건기가 있고, 고려 현종 14년 최치원에게 내린 '문창후' 시호를 새긴 비가 서 있다.

현재까지 전해지는 최치원 흔적 중에는 외동읍 말방리 마을 동편의 토함산 기슭에 위치한 숭복사지도 있다.

이곳에는 그의 뛰어난 학문을 알 수 있는 사산 비명 중의 하나인 유당신라국초월산대숭복사비명(有唐新羅國初月山大崇福寺碑銘)이 있었다.

본 비문은 헌강왕 12년에 최치원에게 짓도록 했는데, 헌강왕과 정강왕이 잇달아 승하해 진성왕 때에야 비로소 완성됐다.

따라서 비문의 내용은 경문왕과 그의 자녀들인 헌강왕 정강왕 진성왕으로 이어지는 2대 4왕의 공덕을 기리는 내용이 많이 담겨있다.



△ 최치원과 관광교류

최양식 경주시장은 지난 2013년 중국 관광객 유치와 문화교류를 위해 우호도시 중국 장수성 양쩌우시를 방문했다.

양쩌우시는 8세기께 신라방이 설치됐던 곳으로 최치원이 5년간 재직했던 곳이다.

최 시장은 방문 기간 동안 '최치원 기념관 제향행사'에 초헌관으로 참석했으며, 동아시아의 교류를 이끈 최치원의 학문과 행적을 살펴보는 '고운 최치원 학술대회'에도 참석했다.

최 시장은 학술대회에 참석해 최치원 선생의 학문에 대한 연구와 선생의 국제성을 현대적 관점에서 재조명했다.

양쩌우시는 2008년 한중우호 상징으로 최치원 기념관을 건립하고 매년 학술대회 등 다양한 기념행사를 개최하고 있다.

경주시와 양쩌우시는 지난 2008년 11월 우호도시로 결연을 맺고 활발한 교류를 추진하고 있다.

지난 10일에는 10개 지자체가 한자리에 모여 최치원 관련 유적지를 한꺼번에 돌아볼 수 있는 관광상품 공동 개발을 논의 했다.

함양군에서 열린 이날 회의에는 경주시를 비롯해 학사루와 상림숲을 보유하고 있는 함양군, 군산시(문창서원·자천대), 문경시(야유암·지증대사적조탑비), 서산시(부성사·서광사), 의성군(고운사), 정읍시(무성서원·파향정), 하남시(최치원도서관), 합천군(농산정·홍류동), 해운대구(해운정·최치원 동상) 등 10개 기초자치단체가 참가했다.

이들 지자체들은 최치원 유적을 통한 상호교류로 미래지향적인 협력방안을 모색키 위해 '최치원 인문관광 도시연합 협의회' 구성을 추진하고 있다.
황기환 기자
황기환 기자 hgeeh@kyongbuk.com

동남부권 본부장, 경주 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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