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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는 심은대로 거두고 뿌린 대로 난다”

[신년대담- 원로에게 듣는다] 1. 김수한 전 국회의장

김정모 기자 kjm@kyongbuk.com 등록일 2015년12월30일 21시01분  
▲ 김수한 전 국회의장

'87년 체제' 이후 이 나라의 형식적인 민주주의는 답보 상태다. 기적이라 불리던 성장도 둔화된지 오래다. 갈수록 빈부격차는 커져가고 있고, 사회경제적인 난제가 난마처럼 얽혀있다.

중국의 경제추격과 일본의 외교압박 속에도 안타깝게 남북은 으르렁거리는 관계에 머물러 있다. 정치 등 각 부문이 제 역할을 찾아야 한다.

본지는 각계 원로들에게 해법을 듣는 신년대담 '원로에게 듣는다'라는 난을 마련했다.


김수한(金守漢) '김영삼민주센터 이사장'이자 전 국회의장이 새삼 주목받는다.

지난해 11월 26일 김영삼 전 대통령(YS)의 국가장 영결식 추도사를 맡아 영하의 날씨로 움추려든 국민의 심금을 뜨겁게 울렸다.

눈발이 휘날리는 국회의사당 광장의 추도사는 명 연설가의 기색이 살아 있는 작은 목소리의 사자후(獅子吼)였다.

"'닭의 목을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는 절규는…. 국민들의 가슴속에 민주주의에 대한 비원으로 아로새겨져 꺼지지 않는 희망의 불씨가 되었습니다."며 노정객은 고인을 추모했다.

중앙정보부의 초산테러, 유신정권 타도 투쟁, 전두환 신군부의 가택연금, 23일 간의 단식투쟁, '2·12 선거혁명'으로 대통령 직선제 쟁취 등 군부독재에 맞섰던 YS의 역정(歷程)을 회상케 했다.

3당 합당이라는 대타협으로 문민정부 창출 등 한국사의 정치를 바꾸는 큰 흐름 속에서 YS와 함께 했던 그다. 2015년 12월 세모(歲慕)에 김수한 전 국회의장을 서울 여의도 사무실에서 만나 대담을 나눴다. 우리 정치의 올바른 방향을 찾기 위함이다.

그는 우리 정치사에서 명 대변인이다. "60, 70년대 김수한 대변인, 80, 90년대에는 홍사덕 대변인"이라는 것이 정계에 회자되는 이야기다. 그가 태어나 자라며 학교를 다니고 청년시절 정치활동을 한 곳이 경북지역임을 아는 이가 그리 많지 않다.

서울 영등포와 관악에서 국회의원에 당선되는 등 유명 정치인 시절 서울에서 정치를 했다. 그의 사무실에 큼지막하게 걸려있는 액자에 '천하위공(天下爲公)'이란 글귀가 눈에 들어왔다. 한중일 3국 서예에 으뜸인 여초 김응현이 국회의장 시절 줬다고 쓰여 있다.

여초와 그는 같은 안동김씨로 각별하다. 예기(禮記)에 나오는 사상으로 하늘 아래 모든 것은 누구나 할 것 없이 공평하다는 뜻.

1911년 신해혁명으로 청(淸)에서 중화민국으로 국호를 바꾼 역사를 주도한 쑨원(손문)의 좌우명이다.

△YS가 서거한 이후 빈소에 가장 먼저 달려가고 빈소를 지킨 것으로 알려졌다.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정치사에 큰 획을 긋는 그러한 일들을 김영삼 대통령께서 시작을 했고 기폭제가 됐고 또 그것을 발전시켜왔다. 예를 들면 40대 기수론은 당시에 미국의 뉴 프론티어로서 케네디가 아주 새로운 역사를 열때와 비슷하다."

△민주주의란 무엇인가. 민주주의 역사에 있어서 YS의 역할은.

-"오늘날 민주주의가 하루 아침에 이뤄진 것도 아니다. 굉장한 모험이고 굉장한 도전이다. 결단성 있는 분의 지도력이 아니고서는 어려웠던 것 아니겠는가. 또 지방자치제의 전면실시, 금융실명제, 공무원들의 재산등록제 등 민주주의를 제도화했다는 것은 민주화의 큰 하나의 산 증거다."

△YS가 화합을 유훈으로 남겼다. 투쟁이 일상사인 우리 사회에 던져진 과제가 무엇일까.

-"좀 더 대국을 보고 그야말로 YS가 갔던 대도무문(大道無門)식으로 트인 정치를 했으면 좋겠다. 큰 목표를 가지고 큰 행동들을 해야 된다."

△박근혜 대통령에게 필요한 리더십은 뭐라고 보나.

-"현재 대통령께서 잘하고 있다고 본다. 특히 애국심이 투철하다. 김 전 대통령의 화합정신을 잘 이해하고 있을 것이다"

△야당 정치인에게 조언한다면.

-"의회주의는 국민의 표에 영합해도 안 되지만 이상주의이어서도 안 된다. 현실 영합은 아니지만 정치의 기초는 현실에 두어야 한다. 현실 위에서 꿈을 펴야 한다." 이 대목에서 한일협정을 언급했다. "64년 '6·3사태'라는 학생운동이 심했고, 한일협정을 제2의 을사보호조약으로 절대반대를 외쳤다. 그러나 당시 우리나라는 세계 최저 빈곤국이다…" 기자에게는 그 때의 투쟁을 우회적으로 반성하는 듯이 들렸다.

△대구 정치인에게 하고 싶은 말은.

-"정치만큼 정직한 조건 반사는 없다. 심은 대로 거두고 뿌린대로 난다"

그는 YS는 "용단의 지도자다. 남이 생각지 못하는 담력이 있다. 이 때다 싶으면 일어나 불길 같은 용기가 있다"고 간단명료하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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