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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태의 고전시담]문천상 과영정양(過零丁洋)

김진태 전 검찰총장 등록일 2016년10월30일 16시3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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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진태 전 검찰총장
草舍離宮轉夕暉(초합이궁전석휘·잡초가 우거진 이궁에 저녁 햇살이 기울고)

孤雲飄泊復何依(고운표박부하의·구름만 외로이 떠도는데 오늘은 어디에서 잠잘까) 

山河風景元無異 (산하풍경원무이·산하의 풍경은 원이라고 하여 다를 리 없건만) 

城郭人民半已非(성곽인민반이비·성곽과 백성들은 반은 이미 아니로구나) 

滿地蘆花和我老(만지로화화아로·땅에 가득한 갈대꽃은 나와 함께 시드는데) 

舊家燕子傍誰飛 (구가연자방수비·옛집의 제비는 누구와 더불어 날아갈까) 

從今別却江南路 (종금별각강남로·지금 이별하고 강남을 떠나지만)

化作啼鵑帶血歸 (화작제견대혈귀·두견새 되어 피를 머금고 돌아오리라)

중국 남송의 재상 문산(文山) 문천상은 20세에 진사시에 장원급제한 후 우승상에까지 이르렀다. 원나라가 침입하여 수도 임안에 다다르자 문관으로서 근왕병 1만 명을 모집하여 분전하였으며 강화 교섭을 위해 원나라로 파견되었으나 항론(抗論)하다가 오히려 붙잡혔다. 송나라는 망하고 문천상은 포로가 되어 북송 중 탈주하여 잔병을 모아 싸웠다. 그러나 다시 체포되어 독약을 먹고 자살을 기도하였으나 실패하고 대도(지금의 베이징)에 3년 동안 갇혀 있다가 원 세조의 회유를 끝까지 거절하고 살해되었다.

문천상은 사람됨이 정의롭고 의기가 넘쳤으며 시는 비장하고 기백이 있었다. 옥중에서 지은 시 ‘정기가(正氣歌)’는 고금의 명시로 인구에 널리 회자되고 있으며, 특히 아래에 소개하는 ‘금릉역(金陵驛)’은 후세 충신들의 절명시 등에도 영향을 준 절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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