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찬 비 내리는 가운데 제막식…강일출 할머니도 눈물

30일(현지시간) 오전 10시 미국 조지아 주 애틀랜타 인근 소도시 브룩헤이븐의 블랙번2 시립공원.

세찬 빗방울이 몰아치는 가운데 미국 남부에서 최초로 ‘평화의 소녀상’ 제막식이 열렸다.

소녀상 건립에 집요하게 반대해온 시노즈카 다카시 애틀랜타 주재 일본 총영사가 ‘위안부는 매춘부’라는 망언을 내뱉어 한국과 중국 외교부에서 잇달아 규탄 성명을 내놓는 등 국제적인 관심이 쏠린 행사였다.

다행히 이날 일본 측의 조직적인 반대 시위는 없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인 강일출(89) 할머니가 직접 참석해 소녀상을 어루만지며 눈시울을 적셨다.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강 할머니는 노란 천에 덮여 있던 소녀상이 모습을 드러내고 축가를 부른 가수 이지연 씨가 꽃다발을 소녀상의 목에 걸어주자, 다가가서 소녀상의 머리를 어루만졌다.

소녀상의 빈 의자에 놓인 꽃다발은 소녀상 건립위원회 김백규 위원장의 부인이 올려놓았다.

소녀상의 빰 위로 마치 눈물처럼 빗방울이 흘러 내렸다고 현장 관계자들은 전했다.

강일출 할머니는 “내 고향이 경북 상주인데 16살의 나이에 일본군에 개처럼 끌려갔다. 나는 과수원 집에 사는 비교적 부유한 집안 출신인데도 강제로 끌려갔다”며 “중국 지린성에서 짐승같은 생활을 했으며, 전쟁이 끝나도 고국으로 돌아갈 방법이 없어 한동안 중국에서 살아야 했다”고 생생하게 증언했다.

강일출 할머니는 “오늘 소녀상이 세워져 너무 기쁘다”며 “소녀상 건립에 노력한 미국 시민 여러분과 한인 여러분들에게 감사한다”고 말했다.

이날 행사에는 라울 도나토 애틀랜타 주재 필리핀 총영사가 참석해 축사했다.

도나토 총영사는 “일본이 전쟁 당시 아시아에 각종 인권유린과 생체실험을 거듭한 것은 역사적 사실”이라며 “애틀랜타 필리핀인을 대표해 두번 다시 이런 일이 있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팀 에콜스 조지아주 공공서비스위원회 부위원장은 “오늘 내리는 이 비는 신이 우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나 애틀랜타 주재 한국 총영사관(총영사 김성진)은 불참했다.

총영사관 측 불참에 대해 헬렌김호 위원은 “총영사관이 초대받았는지 모르겠지만, 방미 중인 문재인 대통령이 최근 일련의 사건을 계기로 불합리한 2015년 위안부 합의에 대해 올바른 방향으로 재논의하기를 기원한다”고 말했다.

이날 제막식 현장에는 AP통신, WSB-TV등 미국 언론은 물론 NHK, 도쿄방송(TBS) 등 일본 취재진이 나와 관심을 나타냈다.

현지 WSB TV는 “일본 측의 극렬한 반대에도 제막식 당일 시위대나 반대 움직임이 없었고, 모든 행사가 평화롭게 치러졌다고 현지 경찰이 밝혔다”고 보도했다.

한편, 애틀랜타에서 퓨전 한식집을 운영하는 가수 이지연 씨가 이날 현장에 나와 노래 ‘바람이 지나가는 길’을 불렀다.

이지연 씨는 “노래한 지가 너무 오래돼서 죄송하다. 제 노래가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께 위로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제막식 후 가족과 함께 나온 시민들은 거센 빗속에도 손뼉을 치고 소녀상과 함께 사진을 찍는 등 한동안 시간을 보냈다.

한편, 이날 행사장에는 글렌데일 소녀상 건립 반대 서명운동을 한 미국인 블로거 토니 마라노가 왔지만, 눈에 띄는 반대 목소리를 내지는 않았다고 건립위 관계자가 전했다.

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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