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왕건에 나라 바친 '비운의 왕' 신라왕릉 중 유일하게 경주 벗어나 오랜시간 실전됐다 영조때 재정비 사악한 기운쫓는 장명등 등 세워진 조선시대 사대부의 묘 격식 갖춰져 풍파에 훼손된 신도비 쓸쓸함 더해 이제 남은 신라왕릉은 마지막 왕인 경순왕의 능뿐이다. 제56대 경순왕은 46대 문성왕의 6세손으로 이름은 부(傅)이다. 그는 천년 사직을 지키지 못하고 신라를 통째로 고려의 왕건에게 바친 비운의 왕이다. 경애왕이 포석정에서 연회를 즐기다가 견훤의 습격을 받아 자결을 하고 견훤에 의해 왕위에 올랐다. ...
후백제·후고구려 침략에 나라 어지러워 제52대 효공왕, 영토 빼앗기는 수모당해 포석정 연회 중 견훤 습격받은 경애왕 비참한 생의 마감 신라 멸망과 닮은 듯 제51대 진성여왕(眞聖女王)의 능은 전해지지 않는다. 그래서 제52대 효공왕(孝恭王)의 능으로 향했다. 가을 하늘은 더없이 청명하고 햇볕 또한 따사롭다. 왜 말이 살이 찌고 책에 손이 가는 계절인지 알 것 같다. 효공왕릉 이정표를 따라 마을에 들어서서 골목길로 한두 집을 지나니 바로 널찍한 터에 조금 큰 봉분이 눈에 들어온다. 견훤과 궁예에게 땅...
헌강왕릉, 높이 4m·지름 15.8m 원형봉토분·4단 둘레돌 1993년 내부 조사…돌문·문지방·폐쇄석·묘도 등 확인 정강왕릉, 2단 둘레돌·상석·육각형 석단 등 놓여 인근 화랑교육원·서출지·통일전 등도 둘러볼만 해 제46대 문성왕과 제47대 헌안왕은 제25대 왕인 진지왕릉 때에 소개하였고 제48대 경문왕릉은 전해지지 않아 제49대 헌강왕릉으로 향했다. 망덕사지를 지나니 화랑교육원이 나왔다. 화랑교육원을 지날 때마다 남편은 추억에 잠긴다. 학생회장직을 맡았던 고등학교 시절 교육을 받으러 왔던 곳이라며...
7번 국도를 따라 사천왕사터에서 울산 방향으로 약 1.5㎞ 가면 길 왼쪽으로 신무왕릉이라는 이정표가 나온다. 이정표 따라 조금 가다가 동방동 마을로 들어서서 약 300m 정도 올라가면 신무왕릉이 있다. 마치 고향 같은 마을길을 돌아가자 작은 문이 달린 담장이 보인다. 제45대 신무왕릉이다. 넓지는 않지만 아담하게 가꾸어진 터다. 양쪽으로는 대나무가, 뒤편은 소나무 숲이 울타리를 만들어주고 있다. 하지만 이곳은 묘지 터로는 명당이 아니라고 한다. 왜일까? 남편이 풍수지리를 안다며 설명을 한다. 원래 명당이란 뒤에는 산이 ...
느직이 집을 나서서인가 희강왕릉과 민애왕릉을 찾을 때쯤에는 배가 무척 고팠다. 우리가 달리고 있는 도로는 경주시내를 한참 벗어나 있다. 내비게이션의 도움을 받아 음식점을 찾아갔지만 예약 손님만 받는다고 한다. 그리고 주변에는 식사할 곳이 마땅히 없단다. 시내로 나가야만 꼬르륵거리는 배를 달랠 수 있다는데 왕릉이 코앞이라 망설여진다. 다시 오는 것보다 배고픈 것을 참는 것이 나을 것 같다. 망성1리 둥굴마을로 들어서서는 대문 밖에서 콩을 다듬고 있는 할머니께 차 세울만한 곳이 없냐고 여쭈었다. 좁은 동네여서 차를 세울 곳...
아침부터 따가운 햇살이 내려와 날씨가 후덥지근하다. 더운 날씨에 주말마다 왕릉을 찾는다고 집을 나서는 우리 부부를 보고 아들들이 도대체 무엇을 하는지 궁금해 하더니 오늘은 꼭 한번 보고 싶다며 따라나선다. 웬 일일까? 같이 가자고 사정을 해도 고개를 가로로 젓던 아이들인데… 흥덕왕릉은 경주의 외곽지역인 안강에 있다. 그래서 포항에 사는 우리에게는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왕릉이다. 아이들과 함께 처음으로 가는 답삿길, 안강 들판을 달렸다. 그런데 정확한 지점을 몰라서 헤매게 되었다. 우리에게는 다반사로 있는 일이어서...
제39대 소성왕(昭聖王)과 제40대 애장왕(哀莊王)의 왕릉은 전해지지 않아 41대 헌덕왕릉(憲德王陵)을 가기로 하였다. 주말만 되면 우리 부부는 왕릉 답사를 위해 지도를 챙긴다. 몇 달째 계속되는 신라왕릉 답사다. 유난히 높다랗게 솟은 왕릉들을 보면서 그 시대를 산 조상들의 삶을 함께 생각해본다. 왕릉 옆에서 남편과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우리도 마치 신라인이라도 된 느낌이다. 오늘은 헌덕왕릉을 찾았다. 경주로 가는 길옆의 벼들은 서서히 이삭을 살찌우고 있다. 북천을 건너기 전 오른쪽 길로 들어서서 다리 밑으로 난 산업도로...
제36대 혜공왕(惠恭王)과 제37대 선덕왕(宣德王)은 왕릉이 전해지지 않아 제38대 원성왕릉으로 향했다. 경주시 외동읍 괘릉리 산 17번지. 이곳에는 물이 많아 괘를 걸어 능을 만들었다는 괘릉이 있다. 괘릉은 바로 신라 38대 원성왕릉이라고 알려져 있다. 경주에서 울산방면으로 7번 국도를 따라 가다보면 길가에 인접한 능의 입구가 보인다. 왕릉을 둘러싸고 있는 담장과 삼문이 있었다는데 지금은 모두 철거되고 앞이 훤하다. 모두가 관광객의 편의를 위해서 정비된 것이라고 한다. 원성왕은 폭우의 덕을 톡톡히 본 왕이다. 선덕왕의 ...
제34대 효성왕릉(孝成王陵)은 전해지지 않아 제35대 경덕왕릉(景德王陵)을 가보기로 했다. 경덕왕은 성덕왕(聖德王)의 넷째 아들이며, 소덕왕후 소생으로 이름은 김헌영이다. 효성왕의 동복 아우인 그는 파진찬 벼슬에 있다가 효성왕 재위 3년인 739년에 태자로 책봉되었다. 그리고 742년 5월에 효성왕이 죽자 왕위에 올랐다. 경덕왕릉이 있는 내남면 부지리를 향하여 차를 몰았다. 그런데 길을 잘못 들어 다른 동네로 들어갔다. 동네 한 가운데에서 아무리 둘러보아도 왕릉 가는 길이 보이지 않는다. 돌아 나오다가 경운기를 몰고 가는...
효소왕릉에서 50m정도 숲길을 따라 들어가면 성덕왕릉이 바로 나온다. 성덕왕릉은 거대한 소나무 숲에 싸여 있다. 왕릉의 입구는 소나무 두 그루가 묘하게 얽혀서 문을 만들어 놓았고 둘레에도 숲이 울창하다. 난간까지 갖춘 둘레돌이 봉분을 받치고, 파손되었지만 갑옷을 입은 십이지신상이 무덤을 지키고 있는 모습이다. 성덕왕 때가 아무리 전성기라 해도 이렇게 다를 수 있을까. 방금 초라한 효소왕릉을 지나왔기 때문에 더욱 비교가 된다. 안내판이 우리에게 간략한 설명을 해준다. 성덕왕릉 (新羅 聖德王陵) 사적 제28...
한국광고영상박물관 주차장에 차를 세워놓고 효소왕릉을 찾았다. 키 높은 옥수숫대가 무성한 밭이 즐비하다. 그 옆으로 심어놓은 콩을 돌보고 있는 할아버지의 얼굴이 햇빛을 받아 반짝인다. 민가 사이로 난 길을 따라 산 쪽으로 가니 철길이 나왔다. 건널목이 없는 철길을 조심조심 건넜다. 조금 더 올라가면 효소왕릉이 보인다. 효소왕릉은 색다른 모습으로 우리를 맞아준다. 몇 년 전에 왔을 때는 주위가 온통 억새 풀밭이었다. 아마 가을이었던 것 같다. 드문드문 자리 잡은 소나무가 하얀 억새 사이에서 푸름을 자랑하고 있어 가을의 정취가...
경주 시내에서 울산 쪽으로 가다보면 왼쪽 길가에 아름다운 소나무 숲이 있고 그 사이로 잘 단장된 봉분을 만나게 된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계단을 오르니 양쪽으로 개망초 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다. 먼저 할머니 해설사가 반갑게 맞아준다. 얼마 전에 TV에서 경주의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문화유산해설사로 활동 중이라는 말을 들었다. 이 분도 문화유산에 관심이 많은 할머니인가 보다. 신문왕릉의 특징에 대해 간단하게 말씀을 해주셨다. "신문왕은 문무왕의 맏아들로 제31대 왕이 된 분입니다. 감은사를 지어 부왕의 호국정신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