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은 금계 황준량의 탄생 500주년이 되는 해이다. 금계 황준량은 경북 영주의 유명한 고택인 삼판서고택의 세 판서 중 하나인 미균 황유정의 5대손으로 평해 황씨이다. 그의 호 금계(錦溪)는 영주 풍기의 아름다운 계곡인 금선계곡(錦仙溪谷)에서 따왔으며 자(字)는 중거(仲擧)이다. 퇴계 이황과 주고 받은 편지가 퇴계집 중의 한 권분에 해당할 정도로 많다. 금계 황준량은 1517년 태어나 1563년 47세에 타계한 인물로 유학을 연구하는 사람들에게는 퇴계 이황이 “하늘이 나를 버렸구나”라고 할 정도로 크게 애통해 하며 행장을...
오늘날 지역 사회의 가장 큰 문제점은 정체성의 혼란이 아닌가 생각된다. 정체성의 혼란을 막기 위해서 근대한국을 만드는 데 앞장서온 기독교가 본래의 기능을 회복해야 할 것이다. 그 이유는 우리 사회의 정체성을 형성하는 데 교회(카톨릭, 개신교 포함)가 직 간접적으로 영향을 끼친 것을 부인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인간의 정체성 상실은 태초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동산 각종 나무의 열매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창2:16-17)” 최초의 인류는 뱀(serp...
지역민이 지닌 정체성의 변화를 가져오는 요소는 매우 많을 것이다. 그러한 요소 중에 분명 종교도 포함된다. 그렇다면 천주교는 경북의 정체성에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 경북지역의 천주교 역사에 나타나는 몇 가지 사항을 살펴보자. 학문적 연구를 통해서 조선에 소개된 천주교는 세례를 받지는 않았지만 천주교의 가르침을 삶으로 생활한 곳이 바로 경북지역이다. 실학자 성호 이익(李瀷 1681-1763)의 문하생들이 1750년 경 천주교 교리를 설명하는 ‘천주실의’와 일곱 가지 죄(칠죄종)을 이겨내고 덕을 닦은 것을 소개한 ‘칠극’을 공부하...
우리의 정체성을 되짚어 성찰하는 것은 대구경북이, 나아가 대한민국이 더 성숙한 사회로 가는 첩경일 수 있다. 기본은 가까운 중국의 실크로드와 한반도를 통해 일본으로 이어지는 상호작용들이다. 이는 무역이나 갈등과 전쟁의 경로이자 문화예술의 상호작용 경로라 하겠다. 이를테면 오사카 성과도 바꾸지 않는다던 일본의 보물1호였던 ‘이도다완’은 결국 한국 것임이 검증되었다. 조선후기 주막집에 마구 뒹굴던 그릇 ‘막사발’임이 확인된 후 보물지정이 취소되었던 것이다. 역설적으로 막사발을 마구 썼을 정도로 한국인의 미의식은 비범하다. 이러한 ...
한 지역이나 국가의 정체성은 오랜 기간에 걸쳐 주어진 자연 환경과 여건 속에서 다양한 사람들이 함께 어우러져 살아가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것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정체성의 실체는 물론 한마디로 표현하기도 어렵거니와 그 시원이나 뿌리는 더 더욱 잘라 말하기가 힘든 대상이다. 가까이는 근대사회의 전개 과정 속에서, 멀리는 신라를 포함한 전통사회 속에서 꾸준히 배태되고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어쩌면 그처럼 오랜 기간에 걸쳐 차근차근하게 축적된 문화의 총체로서 이루어진 것을 정체성이란 이름을 붙인다면 그 뿌리는 분명하게 찾아내...
어떤 경우라도 특정 지역에 사는 주민에게는 다른 지역의 주민들과는 뚜렷이 구별되는 독특한 삶의 방식과 문화를 갖게 마련이다. 오랜 기간 주어진 자연적 환경 속에 살아간 주민의 경험이 축적되면서 나름의 특성이 저절로 형성되기 때문이다. 그로 말미암아 지역의 바깥에서 당해 지역 주민의 삶을 바라볼 때 드러낸 모습을 통해 어떤 연관된 이미지를 자연스레 떠올리게 된다. 이것을 결국 그들에게만 고유한 특성으로서 정체성이라 규정할 수가 있다. 정체성은 피아(彼我)를 구별하는 인식이므로 자신의 주장을 통해서가 아니라 바깥으로 비쳐질 때 올...
한국 역사상 노동자가 노동한 만큼 대우받는 평범한 세상을 위해 헌신한 이로 전태일과 이일제의 비중이 적지 않다. 이일재는 많은 이들에게 낯선 이름이지만 당시 한국의 중요 사건이었던 10월 항쟁의 정체성을 규명하기 위해 꼭 기억해야 할 인물이다. 한 인물을 통해 당시 사회를 알 수 있기 때문이다. 1923년 대구에서 태어났고 혜성보통학교를 졸업했다. 독립운동 자금을 댄 할아버지의 삶에 큰 영향을 받아 사회의식에 눈떴다. 청소년기에 창씨개명 된 문패들을 친구들과 함께 뜯어내다가 수배되어 고령으로 피신하기도 하고 공장 다닐 때는 일...
‘경북의 정체성을 말한다’ 시리즈에 꼭 쓰고 싶은 주제가 있다. 군위 마을과 인각사에 전해 내려오는 우리 모두의 이야기.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띠는 이야기. 우리 어머니의 이야기이다.언젠가 다양한 종교인들이 모여 모두 공감했던 주제는 결국 각자의 종교가 아닌 어머니 이야기였다고 들었다. 어쩌면 삼국유사가 살아 있는 인간의 이야기에 초점을 맞춘 명작이 된 데에는 일연과 그의 어머니 이야기가 삼국유사를 관통하고 있기 때문일지 모른다. 특히 편제가 비슷한 고승전들과 달리 삼국유사에만 들어있는 마지막 장 효선편 다섯 가지 이야기에는 사...
한국근대사는 크게 두 가지 과제를 안고 있었다. 하나는 일제로부터 빼앗긴 나라를 되찾아 독립하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주권이 국민에게 있는 나라를 세우는 것이었다. 독립운동의 역사는 이 두 가지 시대 과제를 동시에 풀어나간 역사였다. 이 때문에 독립운동이 가지는 정통성과 역사적 의의는 매우 크다. 1894년 일제는 경복궁을 침범하고 침략의 야욕을 본격적으로 드러냈다. 이때부터 무너지는 국권을 지키려는 노력과 잃어버린 국권을 되찾으려는 우리의 노력은 51년간 이어졌다. 무기를 들고 일본에게 전면적으로 맞섰던 의병들의 항쟁이 있...
19세기 후반 동아시아 국가들은 충격에 휩싸였다. 청국이 1840년과 1856년 두 차례 벌어진 아편전쟁에서 패배했기 때문이었다. 청국은 막대한 배상금을 물면서 10개의 항구를 개방했고, 자유 무역과 기독교 포교를 허용했다. 이제 서구 세력의 침투는 막을 수 없게 되었다. 청국의 지식인들은 ‘해국도지’ 등 서양 소개서를 펴내서 그 사실을 알렸고, 정부는 신기술을 수용하는 양무운동을 시작했다. 그 최대 성과가 뤼순과 웨이하이의 요새화와 철갑군함을 구입해서 막강한 함대를 구축한 것이다. 북양함대를 보유한 청국이 군사력을 과시할 나...
수운 최제우(崔濟愚) 는 민족 고유의 경천 사상을 바탕으로 유ㆍ불ㆍ선과 도참사상, 후천개벽사상 등의 민중 사상을 융합하여 동학(東學)을 창시한 조선 말기의 종교사상가다. 경주출신으로 조선말기 난세의 나라를 구제하려한 최제우의 사상은 비록 성공하지는 못했지만 오늘날 민주주의와 신자유주의 자본주의가 위협받고 있는 이 시대 다시 돌아봐야 할 사상으로 주목받고 있다. 그럼 최제우는 누구인가. 여러 저술에서 본 그의 행적이다. “최제우의 집안은 7대조 최진립이 의병을 일으켜 순국하였으나, 후손들은 중앙의 관직을 얻지 못해 쇠락한 잔반이...
경북도가 수운잡방과 음식디미방의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를 추진되고 있는 가운데 수운잡방, 음식디미방, 온주법, 시의전서 등 식경이 4권이나 보존되어 있는 경북 한식에 대한 식객들의 관심이 고조되고 있다. 한식은 종가 음식과 깊은 관련이 있다. 현존하는 고려시대 고조리서가 단 한권도 없는 현실에서 남겨진 고조리서 30여 종 대부분은 유가의 제례와 깊은 관련을 맺으며 전승이 되어왔다. 종가의 덕목은 ‘봉제사 접빈객 ’(奉祭祀 接賓客)이다. 각 문중마다 고유의 제례음식이 전해오는 것은 이 때문이다. 특히 술은 접빈과 제례음식에서...
조선건국 61주년이 되는 1453년 10월10일은 조선역사에서 큰 분수령이 되는 계유정난(癸酉靖難)이 발생하여 수양대군이 김종서 · 황보인 등을 죽이고 안평대군은 10월 18일 사사하였다. 10월 15일 정난공신에 수양대군 · 정인지 · 권람 · 한명회 · 신숙주 등 총 43명을 선정하였다. 1455년 을해년(乙亥年)에 세조가 대권을 장악한다. 이들 세력은 훈구파로 지칭되면서 명종대까지 약 1세기 이상 조선정계를 좌지우지하게 된다. 훈구파에 반대한 세력들은 절의파로 사육신과 생육신을 배출하게 된다. 1456년 병자년(丙子年) ...
우리 한국 사람은 열등감이 심한 편이다. 내 집보다 큰평수, 더 좋은 학교, 더 좋은 차, 명품 옷, 더 좋은 직장인에게 열등감을 느끼고 있다. 우리는 나 자신보다 남의 강점을 부러워하고 시기 질투하면서 피곤해 한다. 서양인을 높이보며 스스로 위축되고 있다. 이런 열등 의식은 정체성이 흔들리기 때문에 나타난다. 지나친 경쟁의식과 물질주의 사고로 모두 열등감에 빠지고 있다. 모든면에서 일등을 하는 사람이나 국가는 없다. 이 열등감을 버리고 자신을 옳게 아는 정체감을 찾는 일은 우리의 과제이다. 한국인은 자기가 자기를 보는 것보다...
포은 정몽주(1337~1392)가 활동하였던 14세기는 동아시아사상 대격동기였다. 원나라의 붕괴가 가속화되면서 대륙은 홍건적의 봉기와 한족 반란군의 할거로 내란상태였다. 일본 남북조의 분열과 쟁란에 편승한 왜구의 출몰로 한반도 서남해안 일대는 전쟁을 방불케 하는 상황이었다. 사상적으로도 송대의 성리학사상이 동아시아 보편적 유교사상으로 등장했고 그 영향력을 주변국가에 확대해갔다. 백여 년간 원나라를 중심으로 전개되어온 동아시아 국제질서에 변화를 예고하는 것이었다. 고려왕조도 두 차례에 걸친 홍건적의 침입, 왜구의 발호로 인해 국...
정도전은 경상북도 봉화와 영주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그의 고조할아버지 정공미(鄭公美)는 봉화 정씨의 시조로 봉화현의 호장(戶長, 고을 아전의 우두머리)이었다. 그러나 정공미의 자손들은 이런저런 낮은 벼슬을 하며 대대로 내려오다가 정도전의 아버지에 이르러서는 직제학 같은 중앙의 제법 높은 벼슬을 지냈다. 그의 아버지는 어릴 적에 어머니를 여의고 대대로 살아온 봉화를 떠나 영주 등지에서 한동안 떠돌이 생활을 했다. 이런 탓으로 정도전도 영주를 고향으로 삼게 되었다. 정도전은 아버지가 개경에 와 벼슬한 탓으로 일찍이 개경에 와서 살...
현 시국의 민심은 새 나라를 원한다. 양당 정치체제의 기득권 밖에 없는 현실이 이를 가로막고 있다. 난세에 새 나라를 건국한 궁예를 다시 찾게 된다. 왕건은 궁예 왕의 자리를 정당하지 못한 방법으로 찬탈했다. 분명한 것은 궁예가 없었다면 왕건이 고려를 세우기는 힘들었을 것이라는 점이다. 최근 들어 DMZ 부근에 남아 있는 태봉의 유적지인 궁예 도성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강원도 철원군은 궁예왕이 철원에 태봉국을 건국한 1천 100주년을 맞아 기념우표를 발행했다. 궁예와 그가 세운 나라 태봉은 신라나 고려에 비해 역사가 ...
유신과 춘추는 실과 바늘이다. 이들과 함께하는 동시대의 두 여왕이 있었으니 선덕과 진덕이 바로 그들이다. 이 두 쌍의 조합은 7세기 신라와 삼국시대를 파란만장 스토리텔링의 보고로 만든 주인공들이다. 공교롭게 이들은 모두 김씨이다. 춘추와 선덕, 진덕 두 여왕은 신라 김알지의 후손인 신라 김씨였지만 김유신만은 다른 김씨였으니 바로 가야 김수로왕의 후손 가야 김씨였다. 유신의 일생은 가야멸망으로 가야계 신라인이 되었지만 정통 신라인으로 인정을 받기까지의 눈물겨운 장편 대서사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신라 김씨 선덕과 진덕은 최고...
1989년 인도에 갔다 돌아올 때 여성 여행자는 출입국 담당자조차 처음 봤다고 하였다. 지금 인도에 가면 인도 사람 다음으로 한국 사람이 많다는 우스개가 있을 정도이다. 우리의 급속한 세계화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일화이다. 그런데 그 인도에서 무려 2천 년 전인 서기 48년에 우리나라 가야로 시집온 인도 공주가 있었다. 다문화가족의 원조라 할 것이다. 아유타야국 허황옥, 지금의 김해 지방인 가락국에 나타난 그녀는 남달랐다. 넘치는 카리스마가 우리나라 역대 어떤 개국의 시조와도 견줄 수 없을 만큼 위풍당당하다. 그리고 우리 할머니...
‘삼국유사’는 사람이 주인공인 사람 중심의 이야기이다. 사람은 남성과 여성으로 이루어져 있지만 책 속에서는 거의 대부분 남성이 주인공이고 중심에 있다. ‘삼국유사’는 남성 중심의 역사책이지만 ‘삼국사기’나 ‘고승전’ 등과는 달리 여성성을 간과하지 않는다. 얼핏 남자들의 이야기인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 중심 역할을 하고 있는 주인공은 여성인 경우가 많다. 행간의 뜻을 읽으면 훌륭한 남성 뒤에 그보다 몇 배 더 현명한 여성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삼국유사’의 반전 코드이다. 먼저 ‘삼국유사’ 속 선화공주의 간략 스토리텔링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