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영에서 온 편지
병영에서 온 편지
  • 이상식 포항지역위원회 위원·시인
  • 승인 2018년 02월 18일 15시 59분
  • 지면게재일 2018년 02월 19일 월요일
  • 18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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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8일 월요일입니다. 오늘 입단식을 했고요, 새벽 5시 반에 일어났어요. 완전 무장까지 10분을 줬는데 엄청 바빴어요. 구두 신는 게 너무 어렵네요. 새벽부터 행사 연습을 했어요. 경례와 제식 동작을 반복하면서 배고프고 힘드네요.

아침을 먹고 다시 연습한 후 강당에 집합했어요. 열중쉬어 자세로 계속 섰는데 처음 신은 구두라 다리가 아팠어요. 입단식을 마치고 부모님이 안 온 동기들은 뒤쪽에 따로 모였어요. 가족을 보자마자 울음을 터뜨리는 동료도 있었어요. 뒤편에 모인 우리들은 식당으로 가서 잡일을 도왔지요. 지금은 다목적 강당에 집합했어요.

편지지는 장수가 정해져서 단체로 쓸 경우에만 사용하고, 평소에는 이 메모지로 편지를 씁니다. 오늘부터 정식 부대가 편성됐어요. 어제도 2명이 나갔네요. 현재 399명, 약 160명이 중도에 퇴소했어요. 이제 진짜 훈련이 시작되니 각오하래요. 그래도 열심히 할게요. 사랑합니다. 나의 가족들.”

해군 부사관 후보생으로 진해 해군교육사령부에 입영한 조카의 서신. 고교 졸업식 참석도 못한 채 새해 벽두 입대하여 8주간 훈련을 받는 중이다. 열아홉 살 꽃다운 청춘의 자신감이 기특하다. 흔한 대학을 가는 대신 나름의 꿈으로 군문을 선택한 당당함이 대견스럽다. 학업을 대하는 청년들의 사고가 선진국처럼 바뀌고 있음을 목도한다.

손으로 꾹꾹 눌러쓴 서간을 언제 받아 보았든가. 기억이 어렴풋하다. 서찰 한 통에는 상당한 정성의 무게가 실린다. 쓰고 넣고 봉하고, 우체통에 부치는 노고가 깃든다. 받는 이의 얼굴을 떠올리는 건 당연지사. 이메일이나 메시지가 보편화되면서 아름다운(?) 구석기 문화가 사라지는 듯하다.

부사관 직책은 병사를 이끄는 간부인 탓에 더욱 엄격하고 혹독한 단련일 것이다. 교육생이라 몸은 고되고 잠은 부족하리라. 그럼에도 녀석은 짬나는 대로 문안의 형식으로 기록을 남긴다. 마치 일기를 쓰듯이 어버이께 소식을 써 보낸다. 문학을 하는 나의 입장에선 경탄할 만한 정신의 소유자.

교육 기간 안부 편지는 공식적으로 2주에 한 번 (나중에는 1주에 한 번)을 쓴다고 한다. 틈틈이 적은 글을 모아 두었다가 그때 곁다리로 동봉한다. 검사 결과 2장을 초과하면 퇴짜를 맞는다. 어쩌다 운이 좋으면 통과된다. 봉투 속에 쪽지를 넣었다가 ‘빠꾸’ 먹었다는 내용도 보인다. 편지를 쓰는 이유가 가상하다. 홈피에 자신의 사진이 없을 거 같아, 부모님이 궁금하시리라 여겨 서한을 드린다고.

남자들 세계에서 군대 얘기는 공통의 술안주다. 고생한 추억이기에 그렇다. 군영의 알림엔 연마 중인 용사의 하루가 세세히 다가온다. 물론 직업 군인을 지향하는 부사관 후보생과 의무 복무인 일반 사병은 군기가 다르리라. 아무리 먹어도 모자랄 한창때 나이라 배가 고프다는 대목이 많다. 경황 중에 배변을 참았더니 식사를 적게 했고 허기가 져서 혼났다는 얘기도 있다.

이순신의 ‘난중일기’나 카이사르의 ‘갈리아 전쟁기’가 값진 이유는 현장을 누빈 생생한 경험이고, 생사를 다투는 싸움터의 처절한 증언이기 때문이다. 비약이긴 하나 녀석의 글월도 스스로에겐 그런 값어치가 나가리라 믿는다.

어리광을 부릴 또래 친구도 있을 나이에, 혹한의 훈련을 견디며 일상을 전하는 조카가 자랑스럽다. 도끼 맛을 본 장작처럼 뜨거운 열정이길, 또한 모루에 벼린 강철 같은 사나이로 대한민국을 수호할 간성이 되길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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