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봄의 인문학] 처음앓이
[돌봄의 인문학] 처음앓이
  • 최영미 시인·포항대학교 간호학과 겸임교수
  • 승인 2019년 02월 07일 18시 36분
  • 지면게재일 2019년 02월 08일 금요일
  • 18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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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영미 시인·포항대학교 간호학과 겸임교수
음력의 새해가 밝았다.

해돋이를 보러 가는 인파는 줄어들고 가족이나 친지를 찾아가는 발길은 늘어났다. 선물세트를 들고 다니는 사람들의 모습도 늘어났다. 단체 이름으로 쏟아지는 문자는 공해가 되기도 한다지만 희망을 기원해 주는 덕담이 많을수록 나는 기분이 좋다. 그 많은 새해의 물결 속에 휩쓸려 나도 이제 또 다른 삶 속으로 들어왔다.

나의 어린 시절 설은 새 옷이나 새 신발 등과 같이 왔다. 그것을 머리맡에 두고 자는 설렘은 경험해보지 않고는 짐작도 할 수 없는 즐거움이자 행복이었다. 그 시절, 명절 전 주말이면 엄마는 나를 외갓집에 보내곤 하셨다. 외갓집에 가기 전 시장에 가서 새 옷을 한 벌 사 주셨는데 집으로 돌아올 때면 그 옷으로 갈아입고 오는 것이었다. 위로 오빠가 다섯이나 되고 보니 설이라 해서 새 옷을 산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층층으로 헌 옷을 물려받아 입곤 하던 때였으므로 아버지는 새 옷을 산다는 말만 나와도 불호령을 내리시곤 했다. 그래서 엄마가 나를 위해 생각해 낸 것이 외갓집에서 새 옷을 입고 돌아오는 것이었다. 물론 아버지는 외할머니가 사주신 옷을 입고 왔다고 생각하셨다. 집에서 아버지 농사일을 돕던 둘째 오빠는 그 사실을 모두 알고 있었으므로 아버지가 뭐하러 새 옷을 사주셨느냐고 미안해하면 나를 향해 눈을 찡긋해 보이곤 했다.

이제 새 옷이나 새 신발 등에 관한 설렘은 사라진 지 오래다. 특별한 날이라 해서 새 옷을 사 입는다는 문화도 사라졌고 그것을 특별하다는 범주에 넣어 생각하지 않은 지도 오래됐다. 날마다 새로운 것들로 주위는 범람하다. 새로운 식당이 문을 열고 새로운 옷 가게가 문을 열고 그 새로운 곳을 순회하며 새로움에 대해 무뎌져 가고 있는 현대인들. 새로운 것에 대한 충격을 되살려봐야 할 때다.

나는 알 수 없는 쓸쓸함이나 우울한 기분이 엄습할 때면 처음에 대해 생각하는 습관이 있다. 늘 같은 신발을 신으면서도 그 신발이 나에게 처음 온 날을 생각해보기도 하고, 소매가 낡은 옷을 입으면서도 그 옷이 처음 나에게 왔던 순간에 대해 생각해보기도 한다. 양말 한 짝이라도 우리에게 아무런 의미 없이 와 있는 것은 없다. 선물을 받았건 내가 골랐건 그것이 내 것이 되는 순간 특별한 의미가 생성되는 것이다. 그렇게 하나하나 기억을 더듬다 보면 자욱하던 안개 같은 것이 걷히고 어느새 처음의 그 자리에 마음이 가 있어서 기분이 밝아지고 맑아지는 것이다.

명절 후유증을 앓는 주부들이 많다는 뉴스가 종종 보도되고 있다. 나는 그들에게 특효약으로 ‘처음 앓이’를 권해보고 싶다. 나는 어린 시절의 새 옷이나 새 신발에 대한 추억만으로도 며칠은 행복해질 수 있는데, 그와 비슷한 추억을 찾아보라고 권해보고 싶다. 처음 짜장면을 먹던 때, 여탕이나 남탕에 들어갔던 때, 첫 아이가 태어나던 때, 그 아이가 결혼하던 때…. 눈물 없이는 더듬을 수 없는 순간이 얼마나 많은가. 사람은 누구나 새로운 것을 갈망하고 새로운 것을 환호하고 새로운 것을 찾아 헤맨다. 막 오픈한 식당이 잘 되는 것은 처음을 갈망하는 사람들이 그토록 많다는 것을 입증하는 셈인지도 모른다.

이제 내 마음에 새겨져 있는 새로운 것에 대한 오래된 기억으로 스스로를 치유해보자. 바깥으로 떠도는 의미 없는 허상에 매달리기보다는 내 마음으로 나를 치유함으로써 내가 나로 우뚝 서게 하자. 나는 다른 사람에 의해서가 아니라 나 스스로 만족할 수 있을 때 행복해지는 법이다. 내가 나를 대접함으로써 행복해지게 하자. 오늘 저녁은 가장 맛있었던 어린 시절의 첫 음식 하나를 준비하여 나에게 융숭한 대접을 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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