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밤
붉은 밤
  • 김왕노
  • 승인 2019년 02월 12일 17시 59분
  • 지면게재일 2019년 02월 13일 수요일
  • 18면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뱀이여, 네가 원죄로 철철 우는 붉은 밤
네 울음을 채찍으로 들고 나를 후려쳐라.
온몸에 감기며 벌겋게 남겨주는 살점 묻어난
뱀 무늬로 나도 원죄로 우는 너만큼
내 죄를 울고 불며 붉은 밤을 건너고 싶다.
걸어온 날을 뒤돌아보면
원죄로 우는 것보다 더 울어야 하는
더 아파해야 하는 나인 것을
울음의 채찍으로 피 걸레가 될 때까지
끝없이 나를 내려쳐라. 참혹에 거침없이 이르게
지금은 붉은 밤의 시간, 원죄로 울기 좋은 밤
너만 울고 나는 울지 않는 밤이어서
너만 아프고 내가 안 아픈 것이
더 살 떨리고 뼈저린 일이기에 뱀이여,
울음의 거대한 채찍을 쇠사슬처럼 들고서 쳐라.
휘청거리다 맥없이 내가 쿵 넘어지게
끝없이 후려쳐라, 사정없이 후려쳐라, 뱀이여.





<감상> 자신을 냉철하게 성찰하고, 스케일 크게 표현하는 시인의 힘을 느낄 수 있어 좋습니다. 뱀에게 울음의 채찍을 들고 계속 후려쳐라고 청하는 것은 삶 자체가 죄를 짓는 과정이기 때문입니다. 원죄는커녕 지금 짓는 죄도 반성하지 않고 오만에 사로잡힌 자가 얼마나 많은가.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착취하는 자가 얼마나 많은가. 이들은 “천국 문을 사람들 앞에서 닫고 너희도 들어가지 않고 들어가려 하는 자도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자들입니다. 끊임없이 자신에게 채찍을 가하는 사람만이 붉은 밤을 건널 수 있고, 평안을 찾을 수 있습니다. <시인 손창기>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