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은갈치 떼는 달밤이면
칼날을 번뜩이며 수평선을 썰어댄다.
산굼부리 분화구 옆
자주꽃방망이들은 그때쯤 바늘귀만한 귀를
바다를 향해 열어놓는다.
투드득 투드득 툭툭 팔딱 팔딱
어디선가 여문 가을 열매 터지는 소리
얼굴 발갛게 상기된 집어등들이
일제히 꼽발 내딛고는
그 소리를 다시 먼 지상으로 타전한다.
투드득 투드득 툭툭 팔딱 팔딱
가을 열매 터뜨리는 은갈치 떼 소리에
밤잠을 설치는
귀 밝은 늙은 어부는
밤새 경기(驚氣)하듯 뒤척인다.
내일은 만선일 껴 아무렴!
만선!





<감상> 바다에선 만선(滿船)을, 지상에는 풍년을 기대하는 건 똑같지요. 제주 은갈치가 달밤에 수평선을 썰어대면 풍어를 거두겠지요. 육지의 자주꽃방망이들이 열매 터지는 소리를 내는 것이 물고기 뛰는 소리와 같아요. 꽃과 열매 속에도 물길이 있으니까요. 만선의 소식을 집어등이 꼽발(발돋움)을 내딛어 타전하네요. 늙은 어부도 밤새 뒤척이며 만선을 예견합니다. 바다의 은갈치와 집어등, 육지의 자주꽃방망이와 늙은 어부는 공간만 다를 뿐 모두 만선을 염원하고 있네요. 우리의 삶도 경제가 잘 돌아가서 모두 풍성한 열매를 거두었으면 좋겠습니다. <시인 손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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