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없는 듯이 조용한 바다가 좋더라. 거센 파도가 밀려왔다가 거품처럼 슬며시 숨죽이는 곳. 월송정 지나 손등이 거뭇한 할머니가 제철 방어회를 떠주는 횟집이 있는 곳. 여기에서 독도가 제일 가깝다고 하더라. 그러나 오늘은 돛배도 없고 그곳으로 부는 바람도 없어라. 젊은 시인들끼리 어울려 사진을 찍게 하고 우리는 그냥 볕살 좋은 모래밭이나 거닐며 보릿고개 넘던 서러운 시절을 이야기하고 싶더라. 땅 한 평 없어 식구들끼리 나와 바닷 고기를 후린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 후포. 이제는 겨우 발밑이나 적시다가 고개 숙이며 물러날 줄 아는 겨울 바다가 나는 좋더라.

<감상> 이제 조용한 바다가 좋은 것은 노수(老叟)가 고독한 경지에 이르는 문일 것이다. 홀로 독도로 문을 따고 들어가는 것과 같다. 하지만 오늘은 가는 돛배도 없고 그곳으로 부는 바람도 없다. 젊은 시인들끼리 어울려 사진 찍게 하고, 경치 좋은 곳을 거닐거나 서러운 이야기 하고 싶고 듣고 싶을 뿐이다. 이제 겨우 발밑이나 적시다가 고개 숙여 물러날 때를 아는 노수의 태도는 얼마나 아름다운가. 끝까지 권력을 움켜쥐고 물러날 때를 모르는 인간들은 얼마나 추한 모습인가. 물러나서도 뒤에서 조정하는 인간들은 얼마나 더 추해져야 하는가. 고기를 후린다고 후포라고 붙여진 이름이지만, 시인은 뒤로(後) 물러날 줄 알아서 겨울바다 후포(後浦)인 것이다. <시인 손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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