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 데서 온 택배 같은 것
먼 데서 온 택배 같은 것
  • 송종규
  • 승인 2019년 04월 18일 17시 16분
  • 지면게재일 2019년 04월 19일 금요일
  • 18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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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당신에게 집중하는 동안 당신은
태산처럼 커졌지만 / 다행이다
이제 나는 당신에 대해 아무 짓도 생각나지 않는다
다행이다
당신을 떠올려도 나는 이제 목이 메이지 않는다
우주 저편에서부터 / 기적처럼 저녁이 당도했고 그 봄날
나비처럼 사뿐히 당신은 사라졌다

사실, 이별은 아주 먼 데서 온 택배 같은 것이지만

오래 전부터 꽃들에게 이별은 큰 문제가 아니었다
그들에게 다만 암묵적인 규칙이 있을 뿐이었다
어떤 경이로움이 엄습해 올 때 이를테면, 천둥과 우레 운무 같은 것까지
그들은 그것들을 꽃의 안쪽으로 들여놓았다

바닷가 언덕을 하루 종일 걸었다

세월은 충분히 깊어졌다, 무릎이 다 젖을 때까지





<감상> 사랑하는 당신은 태산처럼 크고, 우주 저편에서 온 저녁 같고, 다른 빛깔의 초록을 끌어당겨 한 빛으로 만드는 것 같다. 당신을 사랑할수록 나는 한 없이 작아지고 흐릿해진다. 그런데 떠난 당신에 대해 목 메이지 않고 생각나지 않는 게 다행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 이별은 어김없이 찾아오는 택배같이 아주 현실적인 문제이므로 그렇게 말할 수 있을 것도 같다. 꽃들은 나비를 떠날 보냈을 뿐, 우레 같은 열정과 운무 같은 옛말을 안쪽으로 갈무리해 둔다. 세월이 충분히 지난 만큼 내 무릎도 다 젖어 있으니 어찌할거나. <시인 손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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