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언 忠言
충언 忠言
  • 서임중(포항중앙교회목사)
  • 승인 2007년 09월 04일 23시 12분
  • 지면게재일 2007년 09월 05일 수요일
  • 19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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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임중(포항중앙교회목사)

사기(史記)와 공자가어(孔子家語)에 나오는 양약고구(良藥苦口)란 말이 있다. "좋은 약은 입에 쓰다"는 뜻인데 충언(忠言)은 귀에 거슬린다는 말이다. 천하를 통일하고 대제국을 건설했던 진(秦)나라 시황제가 죽자 천하가 동요하기 시작했다. 학정에 시달리던 민중들이 각지에서 진나라 타도의 깃발을 들었기 때문이다. 당시의 유방은 경쟁자인 항우보다 한 걸음 앞서 진나라의 도읍 함양에 입성했다. 유방은 3세 황제 자영에게 항복을 받고 왕궁으로 들어갔다. 호화찬란한 궁중에는 온갖 재보(財寶)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고 꽃보다 아름다운 궁녀들이 밤하늘의 별만큼이나 많았다. 원래 술과 여자를 좋아하는 유방은 마음이 동하여 그대로 궁중에 머물려고 했다. 그러나 강직한 용장 번쾌가 간했다. "아직 천하는 통일되지 않았나이다. 지금부터가 큰일이오니 지체 없이 왕궁을 물러나 적당한 곳에 진을 치도록 하시옵소서."

유방이 번쾌의 말을 듣지 않게 되자 이번에는 현명한 참모로 이름난 장량이 나섰다. "당초 진나라가 무도한 폭정을 해서 천하의 원한을 샀기 때문에 전하와 같은 서민이 이처럼 왕국에 드실 수 있었던 것이옵니다. 지금 전하의 임무는 천하를 위해 잔적을 소탕하고 민심을 안정시키는 것이옵니다. 그런데도 입성하시자 재보와 미색에 현혹돼 포학한 진왕의 음락(淫樂)을 배우려 하신다면 악왕(惡王)의 으뜸인 하나라 걸왕과 은나라 주왕의 전철을 밟게 될 것이옵니다. 원래 충언은 귀에 거슬리나 행실에 이롭고, 독약은 입에 쓰나 병에 이롭다고 하였나이다. 부디 번쾌의 진언을 가납하시옵소서." 이 말에 유방은 불현듯 깨닫고 왕궁을 물러나 패상에 진을 쳤던 것이다. 양약고구란 말은 그래서 우리들의 일상생활에 명구가 됐다.

이스라엘의 초대 왕 사울이 이스라엘 왕으로 재위할 때는 선지자 사무엘의 말을 듣고 백성들을 잘 다스렸으며 하나님 앞에서 겸손한 왕이었다. 그런데 세월이 지나면서 왕위가 안정되고 강성해 지면서 사울 왕은 사무엘의 말을 듣지 않기 시작했다. 사무엘을 통해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면서 자기 뜻대로 통치를 하다가 결국 하나님에게 버림을 받았다. 웃시야 역시 어린 나이로 왕위에 오를 때는 겸손한 왕이었고 항상 선지자의 말을 잘 들었다. 그러나 그가 강성해지면서 충언하는 많은 사람들의 말을 듣지 않았다. 결과는 나병환자로 일생을 별궁에서 비참하게 생활하다가 그 열조의 품으로 돌아갔다. 아합왕과 왕후 이세벨은 아예 귀에 거슬리는 말을 하는 선지자들은 모두 죽였다. 그에게는 충언이란 있을 수 없었다. 그 결과 인류 역사에 가장 악한 왕이라는 이름을 남겨야 했다.

오늘날도 그것은 마찬가지다. 올바르게 가르치면 듣기 싫어하고 충언하는 사람을 죽이는 세태가 됐으니 충언을 하려는 사람도 없다. 결과는 자기 스스로의 패망 뿐임을 알지 못하기에 못난 사람들은 그와 같은 삶을 날마다 살아가게 되는 것이다.

이 나라 역대 대통령들은 나름대로 탁월한 지도력이 있었지만 충언하는 사람이 없었고 있어도 듣지 않아 하나같이 실패한 대통령으로 이름을 남겼다. '전사불망 후사지사(前事不忘 後事之師)'라는 말이 있다. "과거를 잊지 않고 미래의 교훈으로 삼는다"는 뜻이다. 통감(通鑑)이란 말도 있다. 역사(歷史)란 말인데 그 뜻은 심오한 차이가 있는 용어다. 즉 역사는 지나온 사실(史實)을 기록한 것에 그치지만 통감은 지나온 사실을 오늘이라는 거울(鑑)에 비추어(通) 내일을 조명한다는 뜻이다. 역대 대통령은 이 말의 교훈을 잊어버렸고 결국 오늘의 역사에 존경받지 못하는 지도자로 자리매김을 하고 있다.

요즈음 정부의 이른바 '취재지원 선진화방안' 추진과 기자실 이전 문제를 둘러싸고 정부와 각 부처 출입기자들이 첨예한 갈등을 빚고 있다. "5공 때도 이러지는 않았다"는 표현까지 나왔다. 급기야 노 대통령은 PD연합회 20주년 기념식에 참석하여 "지금 전 언론사들이 무슨 성명을 내고 IPI(국제언론인협회)까지 동원하고 난리를 부리는데 아무리 난리를 부려도 제 임기까지 가는데 아무 지장이 없을 것"이라는 극단적인 용어까지 사용했다. 이제는 기자와 PD와의 관계마저 갈등을 부추긴다는 말이 뒤를 이었다. 초록은 동색이라 했던가? 대통령의 이 말이 나오기 전에 글로벌 시대에 세계를 보고 국내 상황을 제대로 보고 진솔하게 충언(忠言)할 수 있는 측근이 없다는 안타까움이 국민들의 가슴에 강물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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