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졸 말단 사원서 구단 전무까지 35년 '삼성 토종맨'KS 3승·아시아新 3개등 불멸의 기록 산파역 '톡톡'···········

김재하 삼성라이온즈 단장

"삼성그룹에서 고졸 말단 사원으로 출발해 35년동안 한 지역에서만 근무하며 전무까지 승진한 사람은 제가 유일할 겁니다. 주위에서는 저보고 '토종 삼성맨' 또는 '야구때문에 태어난 남자'라고들 부릅니다."

'야구선수는 아니지만 선수보다 더 야구에 빠져 있는 남자' '삼성라이온즈, 한국시리즈 3번 우승의 산파역' '김응용 감독, 선동렬 감독 영입의 주역'….

이는 국내 프로야구 8개 구단중 최장수 단장인 김재하(55·金載夏) 삼성 단장에게 따라다니는 수식어다. 그는 지난 99년 11월 제일모직(주) 이사에서 삼성 단장으로 자리를 옮긴 후 올해로 만 9년째 단장직을 맡고 있다.

그는 취임 이듬해인 2000년에 명장 김응용 감독(현 삼성라이온즈 사장)을 영입한 데 이어 선동렬 감독을 데려와 삼성이 2002년과 2005년, 2006년 연속 우승 등 3차례 한국시리즈 우승이라는 영광을 안는데 산파역을 한 주인공이다.

지난 2002년 삼성과 LG 트윈스의 한국시리즈 결승전은 대구·경북 지역민들은 물론 야구 팬들에게는 영원히 잊지 못할 한편의 드라마로 기억되고 있다.

9회까지 6대9로 뒤진 상황에서 나온 9회말 이승엽 선수의 동점 3점 홈런과 마해영 선수의 한국시리즈 사상 첫번째 끝내기 홈런 우승 확정은 한국시리즈 사상 가장 드라마틱한 명장면이었다.

KBS, MBC, SBS 등 방송 3사는 이 극적인 드라마를 밤 8시 및 9시 뉴스시간에 헤드 뉴스로 방송하는 등 전 언론이 대서특필했다. 이 사건(?)은 삼성라이온즈를 대구·경북 지역민들이 가장 아끼고 사랑하는 스포츠 구단으로 각인시키는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것.

그래서 삼성 선수들은 물론 대구·경북 야구팬들은 '김응용 사장-김재하단장-선동렬 감독'의 현 스태프진을 최강, 또는 환상의 삼각 편대라고 말하고 있다.

경주 출신인 그를 최근 경산시 진량읍 선화리 삼성라이온즈 클럽하우스에서 만났다.

초등학교때 8km 걸어서 등하교

그는 산골인 경주시 서면 도리 일명 '뒷골'이란 마을에서 가난한 농부의 아들(4남1녀 중 둘째)로 태어났다. 태어난 곳은 경주 김씨 집성촌이었다.

어릴 때 그의 마을은 총 150여가구가 살았으나 지금은 겨우 50여가구에 불과하다는 것. 3학년때까지는 마을에 있는 아화초등학교 도리분교에 다녔지만 4학년때부터는 마을에서 4km 이상 떨어진 본교(아화초등학교)를 걸어서 등하교 해야 했다.

"책 가방 살 형편이 못돼 책 보자기에 도시락을 함께 싼 후 어깨에 매고 다녔지요. 점심때 도시락을 풀어보면 반찬과 밥이 함께 섞여 잡탕밥이 되어 있었지만 꿀맛이었죠. 집으로 올 때 쯤이면 늘 배가 고팠어요. 어릴때는 다른 아이들보다 체력이 좋아 늘 골목대장 노릇을 했던 기억이 납니다."

야구 명문, 대구상고로 진학

그는 경주 시내에 살 던 외가집과 외삼촌, 이모집 등을 전전하며 경주중학교 3년을 다녔다. 공부를 잘 한 탓에 더부살이 값으로 나이가 한두살 아래인 외사촌, 이종사촌들에게 과외 공부를 시키며 함께 지냈다.

대구상고 진학은 큰 아버지의 권유때문이었다. 왜냐하면 그 당시 대구상고가 전국에서 은행원을 가장 많이 배출하는 등 취업이 잘되었기 때문.

어릴때부터 골목대장이었던 그는 활발한 성격과 함께 학업 성적도 늘 상위권이었다. 공부, 운동, 붓글씨, 주산, 봉사활동 등 다방면에 뛰어난 재능을 보였다. 그 덕분에 선생님과 친구, 선배들로부터 인기가 많았다.

그는 대구상고 1학년때부터 열렬한 야구 매니아가 됐다. 특히 당시 청룡기 대회 우승을 이끌었던 정기혁(투수), 김종우(포수)선수를 열렬히 응원했다. 대구상고는 이어 김시진, 이만수, 장효조 등 발군의 스타들을 배출하면서 고교 야구 명문으로 부상했다.

고교졸업 후 은행에 취직할 마음을 먹고 있었다. 그러나 3학년 2학기때 은행들이 아직 신입사원 원서를 일선 고교에 보내기 전이었다. 담임 선생이 제일모직 원서가 먼저 와 있으니 가보겠느냐고 물었다. 당시 제일모직은 대구에서 가장 큰 섬유회사라 은행 못지 않은 월급을 줄 것이라 생각하고 지원했던 것.

"프로야구단 안 보내주면 사표내겠다"

72년 제일모직(주)에 입사한 그는 고교 야구 경기가 있는 날은 회사에서 몰래 빠져나와 야구장을 찾았다. 특히 장효조(현 삼성)의 열렬한 팬이었다.

81년10월 신문에서 삼성이 프로야구단을 창단한다는 기사를 읽었다. 다음날 그는 상관을 찾아가 "창단하는 삼성 프로 야구단으로 보내주십시오. 그렇지 않으면 전 사표를 써겠습니다"라고 진지하게 말했다.

이듬해 4월 그는 삼성라이온즈 창단과 함께 관리과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는 삼성에 입사이후 지금까지 35년동안 제일모직과 삼성라이온즈 두 군데만 오가며 근무하고 있는 조금은 특이한 이력의 소유자다.

삼성라이온즈 홍준학 홍보팀장은 "김응용, 선동렬 감독 영입과 박종호, 박진만, 심정수의 FA(프리에이전트) 계약, 신인 오승환의 스카우트, 2001시즌 후 무적 위기에 놓인 양준혁의 영입 등은 김 단장의 탁월한 업무추진 능력이 만든 삼성구단의 걸작품"이라고 평가했다.

그의 지인들은 그를 두고 '탱크같은 추진력, 따뜻한 가슴, 그리고 마당 발'이라고 평한다. 그는 평소 선수 등 후배들과 소주잔을 기울일 때 '불의부귀 아여부운(不義富貴 我如浮雲-부정하게 모은 부귀는 뜬구름과 같다)'이란 글귀를 자주 읊조린다.

그 이유를 묻자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은 자기의 직업을 천직으로 알고 사명감과 애사심을 가지고 자기 일에 정성을 쏟은 사람"이라고 설명했다. 그가 바로 가장 행복사람으로 보였다.

주요 업적과 남은 일

그는 단장 재임 8년동안 한국시리즈 3회 우승(2002, 2005, 2006) 및 2년 연속 우승의 산파역이었다. 또 페넌트레이스 1위 4회(2001, 2002, 2005, 2006) 및 아시아신기록 3개 를 수립했다. 다름아닌 2003년 이승엽 56호 홈런, 2004년 박종호 39경기 연속안타, 2006년 오승환 47세이브가 바로 그것.

한국 프로야구 25년 역사에서 아시아 신기록은 삼성구단만이 가지고 있는 불멸의 기록으로 평가된다.

특히 2002년 한국시리즈 우승은 삼성구단 역사상 21년만의 첫 우승으로 7전8기가 낳은 값진 선물이었다. 지난해에는 양준혁 선수가 프로야구 최초로 개인통상 2천안타를 달성, 프로야구 사상 최초로 도입된 서머리그 초대 챔피온에 올랐다. 이와함께 한국프로 스포츠 사상 최초의 11년 연속 포스트 시즌 진출의 위업도 달성했다.

그에게 꼭 이루고 싶은 꿈이 있는지 물었다.

"대구에 멋진 꿈의 전용야구장을 하나 짓는 것입니다. 저희 후배들이 좋은 시설과 경기장에서 멋진 경기와 관람을 하는 것을 지켜보고 싶습니다. 물론 대구시와 충분한 협의를 해야겠지요."

그는 한마디로 창단 초창기 지역민들로부터 '미운 오리 새끼' 취급을 받았던 삼성라이온즈를 지역민들로터 가장 사랑받은 스포츠 구단으로 탈바꿈 시킨 산파였다.

한편 그는 고향 후배들에게 장학금을 지급하는가 하면 경산 삼성라이온즈 캠프로 후배들을 초청해 시합을 관람시키는 등 고향 사랑 운동에도 앞장서고 있다.

김재하 삼성라이온즈 단장 이력

▷경주 아화초등학교, 경주중학교 졸업(1969년)

▷대구상고(1973년), 대구대 회계학과 졸업(1989년)

▷영남대 행정대학원 행정학과 졸업(1994년)

▷제일모직(주) 입사(1972년)

▷(주)삼성라이온즈 관리과장(1982년)

▷제일모직(주) 경리과장(1986년), 관리부장(1988년)

▷(주)삼성아리온즈 운영부장(1995년)

▷제일모직(주) 이사 승진(1996년)

▷(주)삼성라이온즈 단장 취임(1999년)

▷상무이사(2002년), 전무이사 승진(2005년)

▷부인 강정기씨와 1남2녀. 종교 가톨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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