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매실농원 '홍쌍리 씨'

매화가 절정을 이루는 청매실농원 전경.

3월 중순이면 매화로 뒤덮이는 청매실농원은 천지가 아득한 구름속이다.

매년 봄이면 제일 먼저 찾아오는 봄꽃, 고결하고 정갈한 자태, 눈꽃처럼 내려앉은 매화를 두고 옛시인은 '오동나무는 천 년을 늙어도 늘 가락을 지니고, 매화는 평생 춥고 배고파도 향기를 팔지 않는다(桐千年老恒藏曲 梅一生寒不賣香)'며 그 고결한 지조를 노래했다.

매화는 한 겨울에도 피는 꽃이다. 하지만 모든 매화가 꽃망울을 터뜨리는 건 3월 중순 무렵.

청매실농원을 가꾼 홍쌍리 여사

이 무렵이 되면 수 천명의 관광객이 어김없이 찾는 곳이 전라남도 광양 백운산 자락에 위치한 홍쌍리여사의 매화천국 청매실농원이다.

전국 방방곡곡에서 매화꽃을 보러오는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는 이곳 청매실 농원을 일구어온 사람은 홍쌍리 여사다.

매실명인으로 널리 알려진 홍쌍리여사는 자연건강법 전도사이자 출퇴근 걱정없는 평생직업을 자랑하는 농사꾼.

"며칠 전까지만 해도 매화축제 기간이어서 청매실농원을 찾은 관광객이 헤아릴수 없이 많았습니다."

매화가 군락을 이룬 청매실농원 언덕에서 내려다보는 섬진강 풍경은 꽃과 산과 강이 한데 어우러져 멋들어진 한 폭의 산수화를 자랑한다. 언덕길을 올라서면 무리 지어 피어난 꽃구름이 사람들을 반긴다. 눈부시게 하얀 꽃은 백매화. 하얀 꽃에 푸른 기운이 섞인 청매화도 손짓하는데, 복숭아꽃처럼 붉은 빛이 도는 홍매화 꽃봉오리도 예쁘다.

경치가 너무 아름다워 이곳을 광양의 몽마르뜨라고 서슴없이 말하는 홍쌍리 여사. 경남 밀양 태생인 홍쌍리 씨(국가지정 전통식품 매실 명인 제14호)는 지금으로부터 42년 전인 지난 1965년, 광양시 다압면 매화마을(섬진마을) 밤나무골로 시집왔다. 그후 현재까지 매실나무 약 5천주가 심어진 산비탈 농장 청매실농원을 가꾸며 오로지 매화·매실과 함께 살고 있다.

수많은 역경을 이겨내고 가장 성공한 여성으로 불리는 그녀지만 오늘의 자신이 있기까지 그 토대를 만들어준 시아버지의 혹독함이 너무 싫어 도망을 친 적도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제 "매실은 자신의 아들이기도 하고 딸이기도 하다"고 할 만큼 매실에 온 정열을 쏟아 붓고 있다.

전통옹기 2천여 기가 눈길을 끄는 청매실 농원 장독대 앞에 선 홍쌍리여사는 매실농원에서 가장 행복한 때는 봄날 이른 아침 이슬 맺힌 매화를 감상하며 산책하는 것이라 한다.

"77년 전인 1931년 시아버지가 일본에서 건너오면서 밤나무 1만주와 매실나무 5천주를 가져와 백운산 기슭에 조성한 것이 오늘날 홍쌍리 매실농원의 기틀이 됐습니다."

그의 시아버지는 율산 김오천 선생이다. 1960년대 전국의 밤나무가 흑벌레 해충으로 죽어가자 이 농장에서 우량 묘목을 전국 각지에 공급했던 공로로 1965년 정부로부터 산업훈장을 받은 인물이다.

밤나무골 영감으로 불려지던 율산선생은 이후 평생을 밤나무 , 매실나무 묘목과 재배 기술보급에 열정을 쏟았으며 그 모든 기술을 며느리에게 전수해주었다.

도망쳐야 할만큼 힘들었던 때도 있었지만 어느덧 그는 매화와 매화나무 재배에 푹 빠져 외길을 달려온 자신을 대견해 하는 전문인이 돼 있다.

지난 97년 명인으로 지정된 후 '매실박사 홍쌍리'로 불리며 지금도 하루하루를 바쁘게 살아가고 있는 그녀의 명성은 동남아 식품박람회를 통해 홍콩과 싱가폴에도 알려질 만큼 국제적인 유명인사가 됐다.

이 모든 것이 시아버지(김오천)와 시어머니의 매실식품 제조 활용법을 예사롭게 보아 넘기지 않고 끊임없이 혼자 연구한 끝에 이룬 결실이다. 시아버지가 매실나무를 심어 매실을 수확하기 시작한 1935년부터 30년, 그리고 1965년부터 명인으로 지정받기까지 31년간을 오직 매실만을 위해 매달려 온 매실인생의 결과다.

지난 95년에는 '매실박사 홍쌍리의 매실미용 건강 이야기'라는 책도 냈다. 그러나 홍쌍리씨는 두 번의 자궁 수술, 2년반동안 목발 신세를 지게했던 류머티스 관절염, 교통사고 휴유중 등으로 많은 고생을 했다. 때문에 자신의 건강을 위해 지천에 널린 매실로 연구를 거듭한 것이 조상들의 지혜가 담긴 토종밥상과 매실요법.

각종 자연요법을 결합한 나름대로의 건강법으로 병을 이겨내고 이 많은 일을 감당해낼 수 있는 체력을 갖추게 됐다고 한다.

엄하기만 했던 시아버지 그늘에서 불평 한마디 못하고 살았다는 그녀, 그러나 시아버지가 돌아가신 지금 그녀는 "아버님 고맙다"는 말을 소리높이 외친다고 한다.

사람이 그리워, 평생을 여자로 못살아도 꽃이라도 실컷 보자는 마음으로 매화를 심고 가꾸었다는 청매실농원 매화단지는 19만8천㎡이다.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글 쓰고, 그렇게 살아오는 세월동안 매화는 자신에게 부와 명예를 한꺼번에 안겨주고 있다. "매화꽃은 늦게 필수록 열매가 실해서 좋다"는 의미있는 한 마디가 가슴에 와 닿는다.

홍여사가 정식으로 매실전통식품제조업 허가를 받은 것은 지난 94년. 그녀가 운영하는 이곳 청매실농원 제품은 맛과 약효가 좋고 그 종류가 다양하기로 유명하다. 때문에 95년에는 매실가공식품으로는 한국 최초로 매실전통식품업체로 지정 받았다. 또 지난 2004년에는 60년 전통의 매실식품제조에 대한 공로를 인정받아 일가기념사업재단으로부터 일가상을 수상 했다. 97년에는 전통식품제조명인 제 14호로 지정됐다. 참 많은 것을 이루어 냈다.

농사꾼은 농사에 몰입해야지 돈을 알면 안된다는 홍쌍리여사.

"우리 아들 딸들이 마음 놓고 식품을 먹을 수 있도록 오직 몸에 좋은 음식을 만든다는 일념으로 일할 뿐"이라고 한다.

앞으로 욕심이 있다면 우리전통 먹거리를 세계 사람들까지 찾도록 하는 일"이라고 말하는 그녀가 진정한 이 땅의 어머니이며 진정한 농사꾼이란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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