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잔틴 제국 황제 유스티니아누스 대제는 ‘유스티니아누스 법전’으로 유명하다. 유스티니아누스는 서로마제국 멸망 후 잃어버렸던 북아프리카와 이탈리아반도를 재 정복, 제국의 판도를 최대한 확장한 업적으로 ‘대제’란 칭호를 얻었다. 유스티니아누스는 삼촌 유스티누스 1세의 뒤를 이어 황제에 오르자 서로마제국의 땅이었던 북아프리카와 제국의 고도 로마가 있는 이탈리아반도의 실지 회복을 국정 1 목표로 내세웠다.

전쟁에 필요한 예산을 마련하기 위해 세금을 올렸다. 그러고도 돈이 부족하자 국채를 마구 남발, 나라가 빚더미에 올랐다. 증세에 반발한 콘스탄티노플 시민들은 전차 경기장에 모여 재무장관을 비롯, 재정 책임자들의 파면을 요구했다. ‘니카의 반란’이라 불리는 시민봉기였다.

궁지에 몰린 유스티니아누스는 그들을 해임, 시민의 요구를 들어주었지만 시민들의 분노는 가라앉지 않았다. 유스티니아누스는 심복 벨리사리우스 장군에게 군대를 이끌고 가 진압하도록 했다. 시민들이 모인 경기장을 덮친 군인들이 시민들을 닥치는 대로 학살, 경기장은 피로 물들여졌다.

반대자들의 씨를 말린 유스티니아누스는 예정대로 원정길에 나섰다. 북아프리카를 정복하고 이탈리아로 진격, 로마를 점령했지만 20년이나 지속 된 전쟁 때문에 농지는 황폐화되고 도시의 모든 시설들은 불타거나 파괴돼 시민들의 생활고는 처참할 대로 처참했다. 굶어 죽은 사람들의 시체가 길바닥에 그대로 늘려 있었다. 무덤을 파 시체를 묻을만 한 체력이 남은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전쟁이 오랫동안 계속되자 이를 뒷받침 하느라 비잔틴 제국의 재정은 완전히 바닥나고, 국고는 텅텅 비게 됐다. 유스티니아누스는 전쟁으로 ‘대제’란 명예는 얻었지만 제국은 심각한 몰락의 길로 빠졌다. 유스티니아누스 사후 황제가 된 유스티니아누스 2세는 금은보화 대신 국채 증서만 산더미처럼 쌓인 국고를 보고 한없이 절망했다.

역사가 므로코피우스는 자신이 쓴 ‘비잔틴제국 비사’에서 유스티니아누스 대제를 ‘하늘이 보낸 역병’이었다고 혹평했다. 총선을 겨냥한 여당의 125조 ‘선심성 약속’이 국가재정을 파탄 내는 ‘하늘이 보낸 역병’이 될까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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