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촌설] 이낙연 총리의 '문(聞)'과 '문(問)'
[삼촌설] 이낙연 총리의 '문(聞)'과 '문(問)'
  • 이동욱 논설실장 겸 제작총괄국장
  • 승인 2019년 05월 14일 17시 47분
  • 지면게재일 2019년 05월 15일 수요일
  • 18면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그동안 정부가 밝힌 이라크 전쟁의 원인은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났다. 도대체 당신이 전쟁을 일으킨 진짜 이유는 무엇인가?” 60년 간 백악관을 출입하면서 존 F. 케네디 대통령부터 버락 오바마 대통령에 이르기까지 10명의 전ㆍ현직 대통령을 취재한 전설적인 여기자 헬렌 토머스(1920~ 2013)의 조지 부시(아들) 대통령에 대한 ‘돌직구’ 질문이다.

이탈리아 오리아나 팔라치(1929~ 2006)기자의 이란 최고 지도자 호메이니 인터뷰 일화도 유명하다. 그녀는 호메이니에게 “차도르를 입은 여성이 수영을 할 수 있겠나?, 당신은 독재자가 아닌가?”라며 거칠고 공격적인 질문을 날렸다.

“자유한국당 입장에서 보면 청와대가 (패스트트랙)정국의 주도권을 쥐고 있으니 대통령을 독재자라 부르는데, 이에 대한 소감을 말해 달라” 문재인 대통령 취임 2주년에 맞춰 진행한 방송 대담 ‘대통령에게 묻는다’에서 진행자 송현정 기자의 질문이다. 야당의 비판을 인용해 대통령을 ‘독재자’로 지칭했다며 비판이 쏟아졌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송 기자의 사과를 요구하는 글이 올라 오는 등 논란이 많았지만 그 가운데 이낙연 국무총리의 발언이 압권(?)이었다. 그는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신문의 ‘문’자는 ‘들을 문(聞)’자다. 그러나 많은 기자들은 ‘물을 문(問)’자로 잘못 안다”고 했다. 이어 “(기자들은)근사하게 묻는 것을 먼저 생각하는 것 같다. 그게 아니다. 잘 듣는 것이 먼저다. 동사로서의 ‘신문’은 새롭게 듣는 일”이라 했다.

기자 출신 총리의 매우 부적절한 훈계다. 신문의 문(聞)은 ‘독자들이 새로운 소식을 접한다는 것’이지 ‘기자가 듣는다’는 뜻이 아니다. 기자는 질문(問)해서 진실에 다가가고, 잘못을 파헤치고, 그 이유를 묻는 존재다. 공격적 질문은 잘못된 관점을 바꾸고, 가치 있는 방향으로 세상을 바꾼다. 권력자에게 질문 할 수 없는 사회는 민주사회가 아니다. 한국판 헬렌 토머스의 등장이 반가운 이유다.

총리는 기자라면 누구나 한 번 들었을 저 유명한 “기자는 대통령에게 수시로 질문하고 책임을 물을 수 있는 유일한 기관이다. 그렇지 않으면 그는 왕이 된다”는 헬렌 토머스의 말도 듣지 못했나.
 

이동욱 논설실장 겸 제작총괄국장의 다른기사 보기
이동욱 논설실장 겸 제작총괄국장
이동욱 논설실장 겸 제작총괄국장 donlee@kyongbuk.com

논설실장 겸 제작총괄국장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