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세기 동아시아 해상권 장악한 장보고의 생생한 숨결 느끼다

5월 1일 열린 하늘길을 통해 대구에서 1시간 10분 지나면 맞닿을 수 있는 중국 웨이하이시의 골프장 풍경. 배준수 기자 baepro@kyonghbuk.com

대구국제공항에서 1시간 10분이면 맞닿았다. 3면이 바다에 둘러싸였지만 비린내가 나지 않았다. 도심 내부는 대구보다 더 말끔했다. 겨울에는 따뜻하고 여름에는 시원해 인류가 살기에 가장 적합한 도시 중의 하나로 불리는 중국 산둥반도 최동단의 웨이하이(威海)시는 그렇게 첫인상을 심어줬다. 경북일보 취재진은 빼어난 해변 등 궁극의 아름다움을 품은 웨이하이를 직접 다녀왔다. 1000㎞에 이르는 해변은 한 폭의 산수화도 같았고, 그곳에서 건져낸 돌기 해삼, 왕새우, 가리비는 절로 미식가로 탈바꿈시켰다. 웨이하이에 즐비한 9곳의 온천은 ‘중국 온천의 고향’이라는 칭송받기에 충분했고, 땅콩과 무화과, 복숭아, 앵두 또한 여행의 즐거움을 한껏 북돋웠다.

대한민국의 수많은 골퍼가 해변도시 안에 자리한 아름다운 풍광의 골프장을 찾기에 웨이하이는 골프 천국으로 불린다. 속살을 파고들면 다른 세상이다. 우리보다 당나라가 더 높이 평가한 해상왕 장보고의 흔적에서부터 녹두장군 전봉준이 일으킨 동학농민운동이 시발점이 된 갑오 청일전쟁의 역사까지 고스란히 남아있다. 역사의 발자취를 따라가 봤다.
 

중국 웨이하이시 석도 적산에 있는 해상왕 장보고 동상과 적산명신 동상. 배준수 기자 baepro@kyongbuk.com

△ ‘해신’ 장보고의 발자취

웨이하이 여행에서 가장 먼저 추천하고 싶은 곳은 석도에 있는 적산(赤山·츠산) 관광지다. 높이 58m짜리 동상이 먼저 맞이한다. 이 동상은 오른손바닥을 펴서 아래로 누르고 있다. 적산포의 파도를 잠재운다는 의미다. 해신이자 수호신의 의미가 담긴 적산명신 동상은 해상왕 장보고를 형상화했다고 전해진다. 적산명신이 우뚝 선 곳에서 아래를 바라보면 통일신라 때 신라인들의 집단거주지와 장보고가 세운 사찰인 적산법화원, 장보고 전기관이 한 눈에 들어온다. 실제 적산명신에게 예를 올리고, 무사 안녕을 기원하는 관광객들이 즐비하다.

중국 웨이하이시 석도 적산에 있는 해상왕 장보고 전기관 전경. 배준수 기자 baepro@kyongbuk.com

9세기 동아시아 해상권을 장악하고 바닷길 무역의 해신으로 불린 장보고의 발자취를 꼼꼼하게 접할 수 있는 장보고 전기관에서는 어깨가 으슥해진다. 2007년 4월 중국 적산그룹유한회사가 5개의 전시실로 꾸민 전기관에는 장보고의 생애 전 과정과 활약상, 빼어난 기상이 모두 담겨 있다. 전남 완도군에서 미천한 신분으로 태어난 장보고는 민중의 삶이 피폐한 시기에 친구 정년과 함께 넓은 세상인 당나라로 건너갔고, 무녕군에 입대했다. 당대의 실력자인 좌의정 이기의 반란을 평정하는데 큰 공을 세웠고, 뛰어난 무예와 용맹을 바탕으로 여러 전투에 참가해 공을 세웠다. 30살 남짓에 무녕군 소장에 올랐다. 고구려 사람으로 안사의 난 진압에 공을 세운 이정기의 후손 이사도의 반란까지 평정한 장보고는 무녕군을 떠나 적산을 중심으로 무역에 종사하면서 큰 부를 모았다. 그리고는 적산법화원이라는 사찰을 세우고 신라인의 구심점으로 삼았다. 당나라 시대 중요한 무역항구인 적산포를 해상무역의 근거지로 삼은 것이다. 웨이하이 현지 가이드는 “장보고가 만약 당나라에 대항하면서 세력을 마구 확장했던 고구려인 이정기와 그의 후손들을 평정하지 않았다면 역사는 또 달라졌을 것”이라면서 “그에 대한 책임의식에 장보고는 적산법화원을 지어 사죄의 마음을 표현했고, 한·중·일 무역을 폭넓게 전개했다”고 설명했다.

장보고 전기관에는 장보고가 828년 신라인을 나포해 노비로 삼는 것을 금지하고 해적을 소탕하기 위해 신라로 귀국한 뒤 청해진을 설치한 장보고가 새로운 해상 무역항로를 개척하는 등 활약을 펼친 이야기도 구체적으로 만나볼 수 있다.
 

‘갑오패전’의 치욕을 교훈으로 삼고자 설립한 갑오 청일전쟁 박물관 등을 갖춘 유공도 전경. 배준수 기자 baepro@kyongbuk.com

△ 국가 치욕 갑오패전, 교훈이 되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은 지난해 6월 12일 웨이하이에 있는 유공도(劉公島·류궁다오)를 찾아 ‘해양강국’ 건설을 주장했다. 1894년 갑오년 청일전쟁에서 패한 치욕을 잊지 말자며 세운 갑오 청일전쟁 박물관을 비롯해 청나라 말기 북양함대의 주둔지와 포대 유적지 등을 둘러보고서다. 그는 “해양강국 건설은 내가 줄곧 품고 있던 신념”이라면서 “항상 경종을 울리고 역사의 교훈을 되새겨야 13억 중국인은 분발해 강성해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

1894년 1월 전라도 고부(정읍시)에서 동학농민혁명이 일어났고, 조선은 동학봉기군을 진압하기 위해 청나라에 파병을 요청했다. 청나라는 당시 조선에서 임오군란과 갑신정변을 진압해 일본의 세력을 잠시나마 축출한 상황이었고, 일본은 다시 조선에 영향력을 미치기 위한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그 상황에서 조선에서 뜻밖의 변수가 일어났는데, 바로 동학농민운동이었다. 대륙확장을 노리던 일본은 청나라의 출병을 종용해 조선에 파병하게 한 뒤 일본 대사관과 상인을 보호한다는 명분 아래 대대적으로 군대를 조선에 진출시켰다. 천진조약을 빌미로 해서다. 이후 선전포고도 없이 전쟁을 일으킨 일본은 청나라 군함을 기습 공격하면서 침략 전쟁을 일으켰는데, 이게 바로 갑오 청일전쟁이다. 조선, 황해, 요동, 웨이하이 등지에서 패전을 거듭한 청나라는 화해를 구걸할 수밖에 없는 궁지에 몰렸고, 일본과의 평화회담에 나서기까지 이르렀다. ‘갑오패전’ 이후 열강들이 아편전쟁 때보다 더 확실하게 중국 대륙을 짓밟아버리면서 중국 지식인들은 그제야 비로소 일본을 모델로 한 개혁, 혁명 운동으로 노선을 바꿨다.

1000여 점의 사진과 2000여 점의 자료를 품은 갑오 청일전쟁 박물관 출구 쪽 맺는말 설명이 눈길을 끌었다. 갑오전쟁은 뼈아픈 좌절이었고, 전쟁의 참담한 실패로 중국은 ‘천하의 중심국가’에서 ‘아시아의 병자’로 전락했다고 설명했다. 나아가 열강의 계속된 침탈로 사분오열돼 전례 없는 망국의 위기에 처했다고도 했다. 그러나 갑오전쟁은 하나의 중대한 전환점이 됐다고 강조했다. 전쟁패배의 강렬한 자극은 중국을 오랜 깊은 꿈속에서 깨어나게 해 국가를 멸망의 위기에서 구하고 생존을 도모하는 길로 나서게 했다는 교훈도 빼놓지 않았다.
 

중화 민족의 1000여 년 문명을 결집한 일종의 테마파크인 화하성 풍경구 입구는 엄청난 규모를 자랑한다. 배준수 기자 baepro@kyongbuk.com

△ 빼놓을 수 없는 관광지

웨이하이의 매력 넘치는 관광지를 한정된 지면에 모두 담을 수는 없기에 빼놓지 않고 챙겨야 할 관광지만 따로 소개한다. 중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해양경관을 가진 성산두 풍경구와 찬란한 역사를 품은 중국의 문화를 엿볼 수 있는 화하성 풍경구다.

웨이하이 서하구 관광지역 내에 있는 성산두 풍경구는 중국에서 가장 일찍 일출을 볼 수 있는 곳으로, 중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8대 해안중 하나로 꼽힌다. 성곽 위 도로를 따라 트래킹도 가능하다. 어마한 크기의 마조상과 태양신이 지켜보고 있는 바다의 빛깔만 봐도 속이 탁 트인다. 해상 케이블카로도 즐길 수 있다. 현지 가이드는 “인천에서 닭이 울면 여기서도 들린다는 이야기가 있다”고 했다. 성산두에서 멀지 않은 곳에는 중국 최대 규모의 야생동물원도 있는데, 해안 방목형의 독특한 방식으로 운영한다. 팬더와 황금원숭이, 맹수들을 직접 볼 수 있다.

중화 민족의 1000여 년 문명을 결집한 화하성 풍경구는 우리로 치면 화씨 가문이 세운 일종의 테마파크로 보면 된다. 최근 시진핑 주석이 다녀간 덕분에 더 유명해졌다. 180만 평이 넘는 이 공간 초입부터 압도적인 규모에 한 번 놀라고, 기상천외한 어트랙션에 또 한 번 놀란다. 먼저, 회전하는 삼년성수관음 주변에서 뿜어져 나오는 분수 쇼가 일품이다. 1000석이 넘는 좌석을 갖추고 360도 돌아가는 유람선에서 7개로 나눠 펼치는 산수실경공연인 신유화하 또한 평소 접해보지 못한 새로운 경험이 된다. ‘대륙의 힘’이라는 말이 절로 나올 정도다. 신유 해양세계라는 이름의 대형 수족관에서 마주하는 펭귄과 고래도 잊지 못할 추억이 된다.
 

중국 산동성 14개의 온천 중에 9개가 웨이하이에 몰려있다. 그래서 중국 온천의 고향으로 불린다. 웨이하이시에 있는 온천의 설경. 웨이하이시 여유국 제공.

△ 손 맞잡은 대구-웨이하이

중국 동방항공이 5월 1일부터 주 4회 대구-웨이하이 하늘길을 열었는데, 5월 한 달에만 3270명이 넘는 이용객이 벌써 이 노선을 이용했다. 58%가 넘는 탑승률이 말해주듯 웨이하이는 매력적인 도시다. 그래서 민간인 대구시 관광협회가 먼저 나섰다.

대구시 관광협회는 5월 26일 웨이하이 현지에서 웨이하이시 여유국 강문일 부국장, 웨이하이시 환추이구 주병 문화부국장 등이 모인 가운데 ‘관광교류 협력 협약’을 체결했다. 배준수 기자 baepro@kyongbuk.com

대구시 관광협회는 5월 26일 웨이하이 현지에서 웨이하이시 여유국 강문일 부국장, 웨이하이시 환추이구 주병 문화부국장 등이 모인 가운데 ‘관광교류 협력 협약’을 체결했다. 대구시 관광협회와 웨이하이시는 관광 교류 활성화를 위해 홍보를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실질적인 경제발전에 힘을 모으기로 했다. 이 자리에서 강문일 부국장은 “5월 20일 대구에서 관광설명회를 개최하고 다시 대구시 관광협회와 뜻 깊은 만남을 갖게 돼 기쁘다”면서 “대구에서 가깝고 아름다운 웨이하이에 더 많은 대구시민을 모시는 기회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윤현 대구시 관광협회장은 “수많은 한국기업이 진출한 웨이하이는 우리에게 매우 익숙하고 친근한 도시”라면서 “대구-웨이하이 직항노선 개설을 계기로 웨이하이 공항이 의료관광 등으로 특화한 대구로 중국인들을 모시는 관문공항이 되도록 노력하겠다”고 화답했다.


 

중국 웨이하이에서 배준수 기자
배준수 기자 baepro@kyongbuk.com

법조, 건설 및 부동산, 의료, 유통 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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