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토(焦土)의 시 8 - 적군 묘지 앞에서
초토(焦土)의 시 8 - 적군 묘지 앞에서
  • 구상
  • 승인 2019년 06월 05일 16시 14분
  • 지면게재일 2019년 06월 06일 목요일
  • 18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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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호, 여기 줄지어 누웠는 넋들은
눈도 감지 못하였겠구나.

어제까지 너희의 목숨을 겨눠
방아쇠를 당기던 우리의 그 손으로
썩어 문드러진 살덩이와 뼈를 추려
그래도 양지 바른 두메를 골라
고이 파묻어 떼마저 입혔거니

죽음은 이렇듯 미움보다도 사랑보다도
더욱 너그러운 것이로다.

이곳서 나와 너희의 넋들이
돌아가야 할 고향 땅은 삼십 리면 / 가로막히고
무주공산(無主空山)의 적막만이
천만 근 나의 가슴을 억누르는데

살아서는 너희가 나와 / 미움으로 맺혔건만
이제는 오히려 너희의 / 풀지 못한 원한이 나의
바람 속에 깃들어 있도다.

손에 닿을 듯한 봄 하늘에 / 구름은 무심히도
북으로 흘러가고

어디서 울려오는 포성 몇 발
나는 그만 이 은원(恩怨)의 무덤 앞에 / 목놓아 버린다.




<감상> 전쟁과 분단으로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지 못한 무덤들이 한 둘이 아닙니다. 적군의 무덤들 앞에서도 우리는 숙연해 집니다. 분단으로 인한 미움과 원한, 대립된 이념을 극복하는 일이 오직 통일을 앞당기는 지름길이라 생각합니다. 죽음은 미움과 사랑을 초월하는 것이라지만, 청춘들의 넋들은 아직도 눈을 감지 못하고 산천에 묻혀 있습니다. 이들의 죽음이 헛되지 않게 민족 분단의 비통함을 딛고, 동포애로써 통일이 하루 바삐 이루어졌으면 합니다. <시인 손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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