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경북포럼] 묵비사염(墨悲絲染), 시찬고양(詩讚羔羊)
[새경북포럼] 묵비사염(墨悲絲染), 시찬고양(詩讚羔羊)
  • 서병진 경주지역위원회 위원
  • 승인 2019년 06월 30일 15시 47분
  • 지면게재일 2019년 07월 01일 월요일
  •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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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병진 경주지역위원회 위원
서병진 경주지역위원회 위원

‘묵비사염(墨悲絲染), 시찬고양(詩讚羔羊)’이 구절은 천자문 25구째 나오는 말이다.

묵비사염하고 시찬고양이라. 묵자는 실이 물드는 것을 보고 슬퍼하였고, 시(詩)는 ‘고양(羔羊)’편을 찬양하였다는 뜻이다.

‘먹 묵, 슬플 비, 실 사, 물들일 염, 글 시, 기릴 찬, 염소 고, 양 양’이라고 한자를 가르치면서 진정한 사랑과 청렴결백한 관리들을 찬양하는 내용을 담은 구절이다.

묵자는 공자가 사망한 다음 해에 태어나 춘추전국시대 중에서도 가장 극심한 혼란과 분열을 겪었던 변환기의 사상가로 자신의 사상과 이론을 추종하는 제자들을 모아 묵가(墨家)라는 집단을 결성해 활동했으며, 유가를 능가할 정도로 큰 세력을 갖고 있었다고 한다.

묵자의 사상은 크게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는데 첫째는 모든 인간을 자신처럼 사랑하라는 ‘겸애설(兼愛說)’이다. 사회의 혼란과 분열은 서로 사랑하지 않기 때문에 일어나는 것이라고 본 것이다.

둘째는 ‘노예도 인간이다’라는 만민평등사상이다. 공자가 말한 사랑, 곧 인(仁)은 천자는 천자답고, 관리는 관리답고, 백성은 백성다워야 하는 사랑이다.

위 계층의 사람은 아래 계층 사람을 자식처럼 사랑하고 아래 계층은 위 계층을 존경하고 복종하는 사랑이었다. 이에 비해 묵자의 겸애는 모든 인간 똑같다는 겸애를 기본으로 하고 있다.

셋째는 침략과 정복 전쟁을 반대하는 ‘비공(非攻)’이다. 제후들이 벌인 전쟁터를 누비고 다니면서 ‘반전평화’를 실천했다.

그는 침략당한 나라와 성을 방어하기 위해 제자들을 이끌고 다녔으며, 방어전쟁만이 ‘의로운 전쟁’이라고 주장했다. 묵수(墨守)라는 말도 이때 생긴 말이다.

‘묵비사염’ 즉 ‘묵자는 실이 물드는 것을 보고 슬퍼했다’는 말은, 인간의 본성은 선(善)하지만 교육과 습관에 따라 선해지기도 하고 악(惡)해지기도 함을 지적한 것이다. 또 흰 실은 검게 염색되면 다시 흰 실이 되기 어렵듯이, 사람도 마찬가지라는 말이다.

‘고양(羔羊)’이라는 시는 중국 대륙 남쪽에 위치한 여러 나라의 벼슬아치들이 주나라를 세운 무왕의 아버지인 문왕의 정치에 감동받아 근검절약하고 공명정대하게 나랏일을 처리한 것을 찬양한 것이다.

‘고양’은 염소로, 고대 중국에서는 벼슬아치들이 염소의 가죽으로 옷을 만들어 의복으로 삼았기 때문에 벼슬아치를 상징하는 말이 되었다. 따라서 ‘고양’은 염소 털가죽 옷을 입은 벼슬아치들을 말하는 것으로, 시 ‘고양’은 청렴결백한 관리들을 찬양한 내용이라고 보면 되겠다.

어릴 때 배웠던 일반적으로 너무 쉽게 치부해버리는 천자문의 한 구절을 곱씹어 보았다.

지금 우리나라 실정이 정말 혼란스럽다. 완전히 편이 갈라져 갈등하고 엎치락뒤치락 싸우고 있는 모습이다. 무슨 철천지원수라도 되는 것처럼 반목질시하고 있다.

묵자의 겸애설과 만민평등사상, 진정한 화해와 사랑이 생각난다. 보수 없는 진보가 어디에 있고, 진보 없이 보수에만 머물러 있을 수 있을까? 온고지신이란 말이 떠오른다. 온고(溫故) 위에서 지신(知新)으로 나아가야 한다. 좌든 우든 극단적으로 치닫는 것은 위험하다. 우가 있기에 좌가 있고, 좌가 있기에 우가 있는 것이다.

전 남편을 죽여 시체를 분쇄하여 유기한 여인을 비롯한 여러 가지 사회적 혼란과 정치인들의 작태가 오십보백보라고 느껴지는 까닭은 어디에 있는 걸까.

진정으로 나라를 사랑한다면 서로 화합하고 사랑하는 분위기를 정치권이나 언론이 앞장서 주었으면 참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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