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 무관심속 출산 '16세 설하' 신분 증명할 학생증 조차 없어
정부 지원금 신청도 쉽지 않아
미혼모협회 "방법찾다 벼랑끝 몰려 행정당국 적즉적인 지원 필요"

복지로 홈페이지 내 청소년 산모 지원안내 화면 일부.
16살의 설하(가명)는 스스로 탯줄을 잘랐다. 대구의 한 원룸에서 1.7㎏ 미숙아를 예정일보다 한 달 빨리 낳았다. 임신 사실을 알고 있는 가족도 도와주지 않았다. 그렇게 ‘어린 엄마’가 됐다. 홀로 출산을 준비한 설하는 산후조리보다 병원비 걱정이 더 크다. 부모의 무관심 속에 학교까지 그만둔 상황에서 돈 나올 구멍이 어디에도 없기 때문이다. 인터넷 검색으로 찾은 벼랑 끝 지푸라기는 대구지역 미혼모협회 ‘아이엠맘(I`m MOM)’(이하 협회). 설하는 이곳에 전화를 걸어 병원에 다닐 차비조차 없다고 호소했다.

정부와 지자체가 청소년 미혼모에 대한 복지지원정책을 시행하고 있음에도 설하는 왜 협회까지 찾게 됐을까.

협회는 국민행복카드(청소년 산모 의료비지원 수단) 발급 등 정부지원을 받기까지 과정을 보면, 만 18세 이하인 어린 엄마들이 나라로부터 돈을 받기가 쉽지 않은 사실을 알 수 있다고 지적했다. 부모의 무관심과 담당 공무원까지 복지지원신청절차를 제대로 알려주지 못한다면 스스로 청소년 산모임을 증명해야 하는 답답한 상황과 역경이 몰려온다고도 했다.

청소년 산모를 위한 의료비지원신청은 원칙적으로 본인이 직접 신청해야 한다. 직계가족이 위임받아 대신 신청할 수 있지만, 설하의 경우 도와주는 가족이 없어 출산 후 나흘 동안 홀로 뛰어다녀야 했다. 산후조리조차 못한 상황에서 병원비를 지원받기 위해 행정 당국 곳곳을 오간 것이다. 김은희 아이엠맘 대표는 “청소년 산모와 관련된 정부 지원을 받으려면 산전검사기록부터 의료진이 산모임을 증명하는 진단서가 필요하고 가족관계증명서와 출생신고서 등 각종 서류를 마련해야 행정 당국으로부터 지원을 받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설하는 학교 밖 청소년인 탓에 신분을 증명할 학생증조차 없었다. 이 때문에 일반청소년증 발급 등 행정 당국에서 요구하는 서류를 마련하고자 산후조리조차 못한 채 홀로 뛰어다녔다. 이 과정에서 행정 당국은 서류 부족을 이유로 설하를 여러 차례 돌려보냈다. 담당 공무원은 설하가 임신·출산 진료비와 청소년산모 임신·출산의료비를 중복으로 받을 수 있는 사실도 몰랐다.

모자보건법 제3조에는 국가와 지자체는 산모와 영유아의 건강을 유지·증진하기 위해 필요한 조치를 하도록 명시돼 있다. 또 모자보건사업에 관련된 시책을 마련하는 등 건강을 지키고 병을 예방하도록 노력할 의무도 있다.

대구의 한 복지지원담당 공무원은 “청소년 미혼모가 복지지원을 신청하는 사례가 극히 드물어 일선 담당자도 전문기관에 협조를 구해 지원절차를 밟아야 한다”며 “20여 개 지원책 가운데 청소년 미혼모에 해당하는 사항을 잘 모르는 경우가 대부분일 것”이라고 설명했다.

협회는 청소년 미혼모에 대한 행정 당국의 적극적인 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특히 직계가족의 도움 없이 홀로 지원금을 신청하는 어린 엄마에게는 행정 기관이 복지지원단을 꾸리는 등 빠르게 지원절차를 도와야 한다고 덧붙였다.

김은희 아이엠맘 대표는 “청소년뿐만 아니라 미혼모가 자신의 아이를 유기하고 살해하는 것이 절대 쉬운 일이 아니다. 방법을 찾다가 벼랑 끝에 섰을 때 극단적 선택을 하게 된다”며 “지원 제도를 잘 모르는 어린 엄마에게 관련 공무원들이 전문가로 나서주고, 미래를 꿈꿀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도와줘야 한다”고 말했다.

전재용 기자
전재용 기자 jjy8820@kyongbuk.com

경찰서, 군부대, 교통, 환경, 노동 및 시민단체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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