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숙 기획자(ART89)
김경숙 기획자(ART89)

1990년대 ‘비 오는 날의 수채화’라는 제목의 영화가 있었다. 그 시절(대학교) 제목만으로도 나의 마음을 흔들었던 영화로 생각되지만, 줄거리는 뚜렷이 생각이 나지 않는다. 오히려 영상과 함께 흐르는 노래가 기억에 남아있다.

강인원(작사·작곡), 권인하, 김현식(노래)이다.

빗방울 떨어지는 그 거리에 서서
그대 숨소리 살아있는 듯 느껴지면
깨끗한 붓 하나를 숨기고 지니고 나와
거리에 투명하게 색칠을 하지

요즘 수채화의 매력에 빠져있다. 종이에 발라지는 물감의 모호함도 좋고, 색의 투명함도 좋다.

서양회화 전통의 수채화는 그 안료가 보통 아라비아풀과 혼합된 형태로 만들어져 투명하게 그려지는 것이지만, 다른 성분이 섞인 불투명 수채화와는 구분한다.

‘희미한 빛, 감미로운 어둠은 오직 수채화만이 표현할 수 있는 영역으로, 이는 마음에 드는 그림을 그린다는 작업의 즐거움을 배가시켜 준다….

두 가지 색이 만나서 합쳐지면 새로운 색이 만들어지고, 두 색 사이의 경계는 흐려진다. 색이 섞이는 것은 신비로움 그 자체이다. 색을 칠하는 것은 사 람 이지만, 색이 섞이는 그 순간은 언제나 놀라움과 감탄이 뒤따른다. 바로 여기에 새로운 창조가 존재하는 것이다’ - 헤이즐 손

학창시절(1980년대) 수채화는 미술 시간과 입시 미술에서 필요한 과정으로만 여겨졌었다. 전시를 기획할 때도 그러한 생각은 좀처럼 변하지 않았다. 그러나 작품을 많이 접하고 감상을 하다 보니 수채화가 가진 여러 색깔에 마음을 빼앗겼다. 어떤 작품은 간결하면서도 투명한, 또 다른 작품은 종이 위에 미묘하게 색이 섞인 것에 감동을 받는다.

하지만, 작품을 보면 볼수록 표현이나 기법이 결코 만만하지 않을 거 같았다.

그리고자 하는 주제에 집중해서 나타나는 빛, 색과 물의 조절, 느낌에 맞는 색의 선택, 단호한 붓질… 수채화를 알면 알수록 어려워 보인다.

 

송재진 作 소백산

수채화의 역사는 오래되었다. 15세기에 비롯되어 19세기 거틴, 컨스터블, 터너 등에 의해 기법 등이 획기적으로 발전되었고, 우리나라에는 1920년경 수채화가 들어왔다. 손일봉, 이인성 등의 화가가 그 당시 활동을 했었다. 현재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수채화 작가도 있다.

헤이즐 손이 표현한 그림에는 같은 색상도 색온도에 따라 구분되어 진다고 했다.

오레올린(차가운 노랑), 인디언 옐로(따뜻한 노랑), 알리자린 크림슨(차가운 빨강), 카드륨 레드(따뜻한 빨강), 프리시안 블루(차가운 파랑), 울트라마린 블루(따뜻한 파랑)….

밝고 선명한 색을 만들기 위해서는 같은 온도의 색(따뜻한 색은 따뜻한 색, 차가운 색은 차가운 색으로)을 섞어야 한다,

반대로 따뜻한 색과 차가운 색을 섞으면 어떻게 될까? 다른 온도의 색을 섞으면 섬세하고 투명한색이 나온다.

내가 생각하는 수채화를 그리고 싶으면 재료와 기법에 익숙해야 한다. 그리고 그 이미지에 차가움, 따뜻함의 온도를 볼 줄 알아야 할 것이다.

‘지워진, 지워져 가고 있는 도시의 흔적, 삶의 뒤안…

나는 지금, 원형을 더듬으며 골목들을 바라본다. 보존이냐, 개발이냐 라는 선택의 창이 아니라 오로지 존재의 창을 통해서, 여전히 바퀴가 닿지 않은, 걸음의 오르막을, 그 막다름의 종점에서 안도하고 있을 어떤 마음을 짐작해 보려 한다’ - 송재진 작가

송재진作 골목

사라지는 골목길 풍경을 따뜻한 시선으로 그려내고(수채화) 있는 송재진 작가의 그림이다. 작가는 경북화단의 밑그림이 되신 이수창, 박기태 교수의 제자이다. 자연스럽게 스승에게 익힌 수채화는 작가에게 가장 편안하고 받아들이기 좋은 쟝르가 되었다.

‘이수창 교수. 그는 ‘묘사’를 거부하는 대신 ‘느낌’에 다가간다. 아무리 아롱거리는 물결이더라도 몇 개의 둔탁한 선이면 그만이다. 서성록이 말했던, 바로 <眞景(진경)>의 경지다. 시 라기보다는 시 형식의 산문 같다는 느낌이 드는 이유이기도 하다’- 흔적과 기억. 송재진 글

아침 햇살이 비추는 창가에 앉아 창밖의 푸른 들판을 바라보는 상상을 한다.

빛의 투명함, 들판의 아롱거리는 꽃들, 따뜻한 햇살, 신선한 아침 공기가 느껴지는 멋진 수채화 한 장 완성해 보자.
 

저작권자 © 경북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