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심 골목 담벼락 밑 작은 꽃밭
어느 할머니 애지중지 상추와 쑥갓을 키웠으리
자식들 따라나서며 논밭을 버린
속 창시 빠진 마음 / 솔솔 재미 붙이는데
누가 자꾸 뽑아가나 그 심사
궁리 끝에 헌 종이박스에 써서 꽂아 놓았구나

도동년 나뿐연
상추 뽀바간연
처먹고 디저라
한두번도 아니고 매년

아따 그러니까 이게 저주라면 참말로 독한 저준데
상추 먹고 급살 맞을 사람 어디 있을까
할머니는 자못 심각한 일인데
무섭다기보다 재미있어서

도동년은 이제 욕도 처먹었겠다 상추를 또 뽑아갈 것 같고
그다음 처방은 뭐라고 내 걸릴까 슬슬 궁금해지고
시방 나는 웃음이 나는 걸 어쩌겠는가




<감상> 농촌이라면 널린 게 상추인데 누가 상추를 뽑아가겠어요. 할머니는 자식들 때문에 논밭 다 팔고 도시로 와서 유일한 낙이 담벼락 곁에 상추 심는 것이죠. 그런데 남의 수고로 제 배 불리는 도동년이 많은 도시사막에서 할머니의 귀여운 한방이 시원스럽고 익살스럽게 다가오네요. 우리네 삶도 심각한 상황일수록 웃음을 잃지 않는 여유가 있었으면 좋겠어요. 다들 사소한 일에도 험악하게 구는 모습들이 곳곳에 도사리고 있으니, 어찌 살맛이 나겠어요. <시인 손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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