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경북포럼] 누란의 미녀
[새경북포럼] 누란의 미녀
  • 이상식 포항지역위원회 위원·시인
  • 승인 2019년 08월 14일 16시 20분
  • 지면게재일 2019년 08월 15일 목요일
  •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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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식 포항지역위원회 위원·시인
이상식 포항지역위원회 위원·시인

애절한 매미 울음에 장단 맞추듯 폭염이 드세다. 세상을 달구는 자연의 결기에 인간은 도피처를 찾는다. 남녀노소 빈부귀천을 따지지 않는 평등한 공간인 공공도서관. 한여름 가객들처럼 이맘때면 독서가와 피서객이 북적인다. 이유야 어떻든 정겨운 풍경이 아니랴. 그 빈둥거림조차 아련한 품위가 어렸다.

근자 영화를 보다가 자신도 모르게 빵 터졌다. ‘메리에겐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 약간은 진지한 코미디이나 야릇한 대사가 나와서다. 친구와 대화를 나누는 주인공. “여자를 만날 때는 수음을 하고 가야 해. 그러지 않으면 장전된 총을 가진 거나 마찬가지야.” “아이코, 지금껏 나는 장전된 총을 지니고 그녀를 만났구나.”

우루무치 홍산 공원 인근 숙소를 나와 시내버스를 탔다. 입구 광장엔 영어·위구르어가 병기된 ‘우루무치 신10경 신장박물관’이란 표석이 놓였다. 고맙게도 공짜 관람이다. 이런 날은 행운을 잡은 듯하다.

신장웨이우얼 자치구는 중국 영토의 6분의 1을 차지하고, 남한 면적의 16배에 달하는 크기이다. 동서로 뻗은 톈산 산맥에 의해 지역이 갈린다. 북쪽은 중가르 분지이고, 남쪽은 타림 분지이다. 톈산과 쿤룬의 빙하 녹은 물이 적시는 타림 분지의 타클라마칸 사막. 누란은 이곳 수많은 오아시스 도시 국가 중의 하나였다.

타클라마칸 동부에 거주하던 누란인은 금발에 하얀 피부의 인도유럽 어족. 기원전 2세기 백인종이 중앙아시아 변방에 살았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 그들은 어떤 경로로 똬리를 틀었을까.

작가 가오훙레이의 저서 ‘절반의 중국사’는 한족과 소수 민족의 얽히고설킨 애증의 역사를 파헤친다. 화려한 문장과 적절한 비유로 선비·거란·여진 그리고 누란 등 18개 아웃사이더를 다뤘다.

누란국은 실크로드 요지에 위치한 탓으로 서역 36국에 포함될 정도로 번성한 신비의 왕국. 한데 이웃한 강대국 흉노와 중원 제국은 젖과 꿀이 흐르는 소국을 그냥 두지 않았다. 맏이는 흉노에, 차남은 서한에 인질로 보내 생존을 도모했다.

결국 기원전 77년 한나라에 정복당하고 국호도 ‘선선’으로 바꿨다. 주둔군은 벌목을 자행하면서 생태 환경이 파괴됐고, 물길이 말라버린 옥토는 황폐화됐다. 누란인은 이주의 길을 나섰고, 수만 명이 살았던 터전은 타클라마칸 아래로 수수께끼처럼 사라졌다.

20세기 초입 스웨덴 탐험가 스벤 헤딘은 모래에 파묻힌 비운의 왕국 누란을 발견했다. 완벽히 보존된 집들과 종이와 목간이 나왔다. 그는 외쳤다. 사막 속의 폼페이, 고대 누란이 세상에 다시 나왔다고.

1980년 중국 고고학 조사단은 누란 무덤에서 3800년 전쯤 여성 미라를 발굴했다. 수의의 형태가 완전한 시신으로 코가 높고 눈이 움푹 들어간 얼굴의 백인. 그녀는 ‘누란의 미녀’라는 시적인 이름을 얻었다.

국보급 미라가 안치된 신장박물관 고대 미라 전시관. 누란의 잠자는 여인 앞엔 유독 관객이 에워쌌다. 그녀는 사십대 미소 띤 얼굴이라 추정한다. 복원 사진을 보니 미인이기보다는 선량한 표정. 사랑하는 남편이 줬음직한 해오라기 깃털이 왼쪽 귀에 놓였다.

고금을 막론하고 꽃미남미녀로 살아가는 건 축복이다. 은연중 타인의 호감을 받아 유리한 경우가 많다. 이는 실험을 통해서도 입증된다. 물론 얼굴값 못하는 꼴값도 드물지 않다. 겉과 속이 다른 수박처럼 말이다. 진정한 미모는 심성의 아름다움 자체라 여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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