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육사와 포항] 2. '노정기'와 '해조사'
[이육사와 포항] 2. '노정기'와 '해조사'
  • 도진순 창원대 사학과 교수
  • 승인 2019년 08월 19일 19시 20분
  • 지면게재일 2019년 08월 20일 화요일
  •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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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센 해풍과 파도속에서 자란 거인 탄생 열망
해조사

1936년 7월 29일 육사가 포항에 왔으며, 여기서 22일간의 장마와 최강 태풍 ‘3693’호를 만났으며, ‘태풍이 몹시 불던 날 밤’, ‘엎어지락자빠지락’ 바닷가로 나아간 것을 소개했다. 1936년 8월 동해바다에서 태풍에 맞섰던 육사는 이듬해 바다와 태풍을 묘사한 시를 연달아 발표했다. 먼저 ‘자오선』’(1937.12)에 발표된 ‘노정기’. 여기서 육사는 서해바다를 밀항하면서 항일운동을 하던 젊은 시절을 태풍과 싸우던 것으로 노래했다.


목숨이란 마-치 깨어진 배쪼각
여기저기 흐터져 마을 이 한구죽죽한 어촌보다 어설푸고
삶의 틔끌만 오래묵은 포범(布帆)처럼 달어매엿다.

남들은 깃벗다는 젊은날이엿건만
밤마다 내꿈은 서해를 밀항하는 「쩡크」와 갓해
소금에 짤고 조수에 부프러 올넛다.

항상 흐렷한밤 암초를 버서나면 태풍과 싸워가고
전설에 읽어본 산호도(珊瑚島)는 구경도 못하는
그곳은 남십자성이 빈저주도 안엇다.

쫏기는 마음! 지친 몸이길래
그리운 지평선을 한숨에 기오르면
시궁치는 열대식물처름 발목을 오여쌋다.


새벽 밀물에 밀려온 거믜인양
다삭어빠진 소라 깍질에 나는 부터왓다
머-·ㄴ 항구의 노정(路程)에 흘너간 생활을 들여다보며




이처럼 ‘노정기’는 육사가 ‘태풍과 싸워가며 쫓기는 마음 지친 몸으로 그리운 지평선을 한숨에 기오르는’ 험난한 항일운동의 추억을 노래했다. 이것은 1년전 포항 동해 바다에서‘태풍이 몹시 불던 날 밤’, ‘가시넝쿨에 엎어지락자빠지락’바닷가로 뛰어나간 것과 같은 문학적 맥락에 있다.

노정기

‘노정기’가 태풍과 싸우면서 나아가는 것을 노래했다면, 그러한 전진을 가능케 하는 내면의 단련과 자신의 재탄생을 염원하는 시가 ‘해조사(海潮詞)’(‘풍림’ 1937. 4)이다. 다음은 ‘해조사’5~9연.

쇠줄에 끌여것는 수인(囚人)들의 무거운 발소리!
옛날의 기억(記憶)을 아롱지게 수(繡)놋는 고이한 소리!
해방을 약속하든 그날밤의 음모를
먼동이 트기전 또다시 속삭여 보렴인가?

검은 벨을 쓰고오는 젊은 여승(女僧)들의 부르지즘
고이한 소리! 발밑을 지나며 흑흑 늦기는건
어느 사원을 탈주(脫走)해온 어엽뿐 청춘의 반역(反逆)인고?
시드렀든 내항분(亢奮)도 해조(海潮)처름 부폭러오르는 이밤에

이밤에 날부를이 업거늘! 고이한 소리!
광야(曠野)를 울니는 불마진 사자(獅子)의 신음가?
오 소리는 장엄(莊嚴)한 네생애의 마지막 포효!
내 고도(孤島)의 매태 낀 성곽을 깨트려다오!

산실(産室)을 새여나는 분만의 큰 괴로움!
한밤에 차자올 귀여운 손님을 마지하자
소리! 고이한 소리! 지축이 메지게 달녀와
고요한 섬밤을 지새게 하난고녀.

거인(巨人)의 탄생을 축복하는 노래의 합주!
하날에 사모치는 거룩한 깃봄의 소리!
해조(海潮)는 가을을 불너 내 가슴을 어르만지며
잠드는 넋을 부르다 오- 해조! 해조의 소리!




‘해조사’는 한밤의 해조, 즉 바다파도를 통해 니체의 초인(거인)탄생을 염원하고 있다. 니체는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인간 정신의 3단계 발전을 묘사했다. 즉 인간이 무거운 짐을 잔뜩 지고 남의 명령에 묵묵히 복종하는 ‘낙타’의 단계를 넘어, 모든 짐을 훌훌 털어버리고 자유를 쟁취해 광야에서 주인이 되는 ‘사자’의 단계를 거친 후, 남으로부터가 아니라 자기 스스로의 창조적 세계를 구축할 수 있는 ‘어린이’로 다시 태어나야 ‘초인(거인)’이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육사는 ‘해조사’에서 ‘시들었던 내 항분(亢奮)’즉 일제에 대한 분노를 ‘해조(海潮)처럼 부풀어 오르게 ’하여 ‘낙타’의 단계를 벗어나, ‘사자’의 ‘포효’로 자신의 ‘매태 낀 성곽을 깨뜨리고, 나아가 산실을 새어나는 분만의 큰 괴로움을 거쳐 거인(巨人)의 탄생’으로 나아가고자 한다. ‘분만(分娩)’을 통한 ‘거인의 탄생’ 장면은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의 다음 구절을 연상시킨다.



이제야 비로소 인류의 미래라는 신이 산통으로 괴로워하는구나. 신은 죽었다. 이제 우리는 소망한다. 초인이 태어나기를.



‘해조사’에서 시적 화자인 ‘나’는 총 맞은 ‘사자’의 마지막 포효처럼 우렁찬 해조(海潮)의 장엄한 소리가 자신의 ‘가슴을 어루만지며’, 자신의 ‘잠드는 넋’을 불러, 자신이 ‘거인’으로 ‘탄생’할 수 있기를 바란다. 그리해 ‘질투의 반군성’에서는 ‘반군의 성이 무너지는 듯’했던 바로 그 파도소리가, ‘해조사’에 이르러 ‘거인의 탄생을 축복하는 노래의 합주!’, ‘하늘에 사무치는 거룩한 기쁨의 소리!”’로 울려 퍼지게 되는 것이다.

여기서 ‘거인’은 곧 시적 화자이며, 이육사의 ‘또 다른 자아’이다. 즉 그가 정녕코 열망하던, ‘자신에 희생을 요구하는 노력’으로 ‘기백을 키우고 길러서 금강심’으로 시를 노래하는 ‘비극적 히어로’의 모습이었다. 비극적 영웅의 금강심, 이것이야말로 “온갖 고독이나 비애를 맛볼지라도 ‘시 한편’만 부끄럽지 않게 쓰면 될 것”이라는 다짐의 요체가 되어, 1939년 이후 ‘청포도’등 육사의 대표작들을 탄생시킨 동력이 됐다. 또한 ‘해조사’의 ‘거인’은 육사의 유언이자 절창인 ‘광야’에서 죽음을 넘어서 ‘백마 타고 오는 초인’으로 발전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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