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승태 공판 증언…"‘재판거래 부인’ 대법관 성명, 판사들 모독이라 생각했다"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을 받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27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속행 공판에 출석하기 위해 법정으로 향하고 있다. 연합
양승태 사법부 시절 대법원이 강제징용 사건의 최종 결론을 미룬 과정을 두고 “행정처 의견이 반영된다고 의심하는 게 자연스럽다”고 현직 부장판사가 법정에서 주장했다.

수도권 지방법원에서 근무하는 이모 부장판사는 27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5부(박남천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양승태 전 대법원장 등의 속행 공판에 증인으로 출석해 이렇게 밝혔다.

이 부장판사는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사건의 수사가 진행 중이던 지난해 7월 자신의 페이스북에 강제징용 사건이 재검토된 과정 중 한 장면을 소개한 인물이다.

2014∼2016년 재판연구관으로 근무한 이 부장판사는 당시 이인복 전 대법관이 “미쓰비시 판결이 이상하다”, “한일 외교관계에 큰 파국을 가져오는 사건”, “손해배상을 50년간 인정하는 것이 소멸시효 등에 문제가 있다”는 등의 말을 하며 재검토를 지시했다고 증언했다.

이 전 대법관은 애초 2012년 전범기업의 배상책임을 인정하는 취지로 판결한 대법원 1부에 속해 있었으나, 4년 뒤에는 이를 부정하며 재검토를 지시한 것이다.

이에 대해 이 부장판사는 “대법 판결의 기속력에 따라 원심이 판결한 사건이 재상고 됐을 때 다르게 판결하면, 종전 대법원 판결의 권위와 위신이 크게 떨어지므로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라며 “그런 일이 있으면 쉽게 말해 ‘난리’가 난다”고 평했다.

이 전 대법관이 강제징용 판결의 문제점을 누구에게 들은 것 같은 느낌을 받았느냐는 질문에는 “대법관들 사이에서 공유된다는 생각은 들었다”고 밝혔다.

다만, 이날 신문 과정에서 공개된 이인복 전 대법관의 검찰 신문 내용에 따르면 이 전 대법관은 이 부장판사의 진술과 배치되는 주장을 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전 대법관은 ‘이 부장판사도 종전 판결의 파기 가능성을 알았다고 한다’는 질문에 “연구관이 그렇게 생각한다면 철없는 소리”라며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답변했다.

이 부장판사에게 재검토를 지시하던 당시의 상황에 대해서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이 전 대법관은 진술했다.

그러자 이 부장판사는 “이 전 대법관이 그렇게 말씀하셨다면 유감”이라며 자신의 진술이 맞다고 재차 반박했다.

이 부장판사는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이 한창 불거졌을 때 대법관들이 ‘법원행정처가 대법원 판결에 영향을 미칠 수 없다’는 취지의 성명서를 내자 이를 비판하는 글을 페북에 올리기도 했다.

당시 그 글을 올린 경위를 질문받자 이 부장판사는 “대법원에서는 식사 시간에도 대법관님이나 (행정처)실장님, 수석재판연구관님 등이 모여서 식사를 한다”며 “언제든 환담을 할 수 있고, 대부분 대법관님들이 행정처에 오래 있던 분들이라 행정처장님, 실장님 식구들”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과연 이분들이 인적이나 공간적으로 분리된다고 볼 수 있는지, 상식적으로 법률가라면 행정처 의견이 반영된다고 의심하는 것이 자연스러워 보인다”며 “대법관의 공식 성명이 판사들을 모독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글을 썼다”고 말했다.

반면 양 전 대법원장 측 변호인은 “증인이 연구관으로서 일하는 동안 행정처로부터 사건 내용에 관해 요청을 받거나 영향을 받은 경험이 있느냐”고 물었다.

이에 이 부장판사가 “없다”고 답하자, 변호인은 “증인도 그런 경험이 없는데, 같이 식사를 한다는 등의 이유 말고 대법관이 행정처로부터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고 주장할 근거가 있느냐”고 반문했다.

그러자 이 부장판사는 “결정 권한을 가진 사람들이 있는데 의심이 가는 것이 당연한 것 아니냐”고 재차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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