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즌 개막 후 팀이 연패에 빠지자 3위때까지 금주 선언
구단스태프 요청에 따라 승리할 때마다 '칭따오' 파티하기로
이후 7전 6승 1무 기염 토해내…남은 5경기 전승 여부 눈길

포항스틸러스 양흥열 사장(왼쪽)이 장영복단장(왼쪽 두번째) 등 구단스태프와 함께 칭따오 맥주를 마시며 승리각오를 다지고 있다.

지난 3월 프로축구 K리그 시즌 개막 이후 연패를 당하면서 성적이 곤두박질치자 ‘3위로 올라가기 전에는 술을 마시지 않겠다’고 선언했던 양흥열 포항스틸러스 사장이 다시 맥주잔을 들어 올렸다.

포항은 올 시즌 개막을 앞두고 ‘시즌 20승 달성으로 자력 3위 진출 및 FA컵 우승을 통해 축구명가를 되살리겠다’는 단단한 각오를 천명하는 출사표를 던졌다.

이렇게 시즌을 시작한 포항이었지만 3월 3일 서울과의 시즌 개막전에 이어 3월 10일 상주와의 2라운드 마저 패하면서 11위로 추락하자 양흥열 사장은 스스로 금주선언을 하며 비장한 각오를 다시 한번 되새겼다.

1년 365일중 300일 이상 술을 마시는 애주가 였던 양 사장의 한시적 금주 선언은 충격적이었다.

평소 양 사장과 절친한 술 친구였던 주변 사람은 물론 포스코에서 한솥밥을 먹었던 선·후배·동료들 마저도 양 사장의 금주선언과 5개월간의 금주가 계속되면서 혀를 내둘렀다.

포스코의 한 선배는 “맘 좋은 선비같았던 양 사장이 저렇게 독한 사람인 줄 몰랐다”는 우스개 소리로 지켜보기도 했다.

하지만 양 사장의 이 같은 각오에도 불구하고 포항은 끝갈 데 없는 추락을 거듭하다 결국 8라운드가 끝난 뒤 최순호 감독 대신 김기동 수석코치를 감독으로 교체시켰다.

지휘봉을 받은 김기동 감독은 4연승을 내달리며 반전의 기회를 마련하는 듯 했지만 6월 이후 또 다시 추락하기 시작, 중하위권은 물론 강등권 위기까지 내몰렸다.

설상가상 중원을 지키던 이석현 마저 군에 입대하면서 어디 한 군데 믿을 만한 곳 없는 팀이 되면서 후반기 반전 마저 기약하기도 어려웠다.

위기에 처한 포항은 7월 휴식기 동안 외국인 선수 2명을 내보내고 공격수 일류첸코와 팔로세비치를 영입하고, 전북에서 미드필더 최영준까지 임대영입하며 후반기를 준비했지만 뭔가 될듯 될듯하면서도 고비를 넘지 못하면서 9위권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8월 들어 영입해 온 선수들이 조금씩 팀에 녹아들면서 수원을 2-0으로 잡으며 산뜻하게 출발했지만 전북·상주와의 경기서 좋은 경기를 펼치고도 잇따라 패하면서 상위스플릿 진출의 꿈도 조금씩 멀어져 갔다.

포항은 지난 8월 18일 상주와의 시즌 26라운드 경기를 포항이 상위스플릿 진출을 위한 최대고비로 꼽고, 모든 전력을 쏟아부었지만 결국 1-2로 무릎을 꿇었다.

그날 경기장을 떠난 양사장은 그야 말로 뜬 눈으로 밤을 세우다 문득 “내가 이렇게 화나고 안타까운데 감독이나 선수들 마음을 어떨까?”“승부에 집착하다 보면 결국 경기력이 더 나빠질 수 도 있겠다”는 생각이 불현듯 스쳐 지나갔다.

다음날 출근한 양사장은 구단스태프와 김기동 감독을 비롯한 코칭스태프를 불러 모은 뒤 ‘나부터 승부에 집착하지 않겠다. 남은 경기에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만 다하자’는 뜻을 밝혔다.

그리고 당시 개봉한 화제의 영화 ‘봉오동 전투’를 보며 새로운 각오를 다졌다.

이날 스태프들은 “사장님이 5개월 째 술을 끊고 계시니 사실 모든 사람이 부담스러우니 기왕 마음을 열려면 술도 한잔 하시는 게 어떠시냐”는 제의를 받았다.

하지만 양사장은 그 제의를 받아들이지 않는 대신 ‘앞으로 팀이 승리하면 맥주를 마시겠다’고 선언했다.

양사장의 이 선언이 올 시즌 내내 포항을 괴롭혀 왔던 저주를 풀어줬던 것일까?

8월 25일 27라운드 인천과의 경기서 포항은 무려 5골을 뽑아내는 괴력을 선보이며 5-3승리를 거둔 뒤 성남·서울·제주·경남을 차례로 꺾은 데 이어 지난 6일 선두 울산마저 2-1로 잡고 5위로 뛰어 올랐다.

지난 8월 18일 26라운드가 끝난 뒤 승점 계산에서 상위스플릿 진출은 사실상 기적이나 다름없는 것이었지만 포항은 27라운드부터 7경기 동안 6승 1무라는 기적을 썼던 것이다.

27라운드 인천전 승리 이후 양 사장이 맥주를 마신 것은 당연한 것이었다.

그러나 이 마저도 그냥 마시지 않았다.

올 시즌 포항스틸러스 스폰서 기업인 중국 ‘칭따오’맥주를 파는 집을 찾아 치맥을 마신 뒤 단체로 사진을 찍어 스폰서 기업에 보냈다.

‘우리가 이렇게 칭따오 맥주를 마시니 내년에는 스폰서를 더 많이 해 달라’는 의미였다.

그리고 양흥열 사장은 “올 시즌 개막전 참 큰 꿈을 꾸었는데 지난 33라운드가 너무 힘들었습니다. 이제 남은 5경기서 더 좋은 경기로 포항팬들에게 기쁨을 줄 수 있도록 노력할 것입니다.”라며 다시 한번 각오를 다졌다.
 

이종욱 기자
이종욱 기자 ljw714@kyongbuk.com

정치, 경제, 스포츠 데스크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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