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조시대 제왕을 가르치고 계도하는 것은 재상의 중요한 임무였다. 제왕이 비뚜로 걷게 되면 재상은 목숨을 걸고 그 길을 바로잡아야 했다. 제왕의 법치 문란은 나라를 도탄에 빠지게 하기 때문이다. 신라 진평왕 때 재상의 반열에 오른 김후직은 강직한 신하였다.

진평왕은 사냥에 빠져 국사를 게을리 했다. 하루는 사냥에 나서는 진평왕을 가로막고 간언을 올렸다. “옛날의 왕은 하루에도 만 가지 일을 깊이 생각하며 좌우의 바른 신하들의 직간을 받아들이고 부지런히 힘쓰면서 덕치를 펴 국가를 안정시켰습니다. 그런데 왕께서는 사냥꾼과 더불어 날마다 매와 개를 풀어 토끼와 꿩을 쫓아 산야를 달리는 것을 그칠 줄 모릅니다. 노자에 말달리기와 사냥은 사람을 미치게 할 뿐이라고 하였습니다. 시경에서는 안으로 여색에 빠지거나 밖으로 사냥에 빠지면 반드시 망국에 이른다고 했습니다. 이를 미루어 봐 안으로 마음이 방탕하면 밖으로 나라를 망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왕께서 저의 충언을 깊이 살피시기 바랍니다”

김후직은 이 같은 간언을 여러 차례 올렸으나 진평왕에게 마이동풍이었다. 진평왕이 점점 사냥에 빠져들자 상심해 병을 얻어 죽게 된 김후직은 아들 삼형제에게 유언을 남겼다. “나는 신하로서 임금의 잘못을 구원하지 못했다. 비록 죽어서라도 반드시 임금을 깨우치게 할 생각이다. 내 뼈는 임금이 사냥 다니는 길가에 묻어라”

삼형제는 부친의 유지를 그대로 따랐다. 어느 날 진평왕이 사냥에 나섰는데 갑자기 허공에서 소리가 들려왔다. “가시지 마시오” 놀란 진평왕은 따라온 신하들을 시켜 소리의 진원지를 알아보도록 했다. 알아보고 온 신하들이 소리의 진원지는 김후직의 무덤이라고 보고 했다. “그가 죽어서도 나에 대한 충간(忠諫)을 그치지 않으니 임금을 사랑하는 마음이 한없이 깊구나. 나의 탈선을 바로잡지 못하면 저승에서 무슨 낯으로 그를 보겠나” 마음을 고쳐먹은 진평왕은 죽을 때까지 사냥을 그만두고 국정에 매진, 삼국통일의 기초를 닦았다. 후세 사람들은 김후직의 묘를 ‘묘간(墓諫)’이라 불렀다.

조국 사수에 대통령과 맞장구친 이낙연 총리는 김후직의 ‘묘간’에 부끄럽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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