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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촌설] 사간원과 직언정치
[삼촌설] 사간원과 직언정치
  • 설정수 언론인
  • 승인 2019년 11월 04일 17시 29분
  • 지면게재일 2019년 11월 05일 화요일
  • 18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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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자는 쟁신(諍臣) 7인만 있으면 비록 무도하더라도 그 천하를 잃지 않고, 제후가 쟁신 5인만 있으면 비록 무도하더라도 나라를 잃지 않으며, 대부가 쟁신 3인만 있으면 비록 무도하더라도 그 집을 잃지 않는다” ‘효경(孝經)’의 가르침이다.

쟁신은 임금의 잘못을 바른말로 간하는 신하다. 조선 시대 대표적 감찰관으로 사헌부와 사간원을 두었다. 오늘날 검찰과 감사원 기능을 합쳐놓은 것과 같은 사헌부 관원들의 근무 태도는 대단히 엄격했다. 출근할 땐 부하 관원들이 섬돌 아래 도열한 채 상관을 맞이할 정도였다.

반면 왕에게 직언하는 사간원은 사헌부와 정반대로 자유분방한 분위기였다. 관원들은 업무가 끝나면 술판을 벌였고, 근무 중에도 후원에 나가 옷을 벗고 드러눕기도 했다. 나라에 금주령이 내려도 사간원 관원들에겐 음주가 허용됐다. 이처럼 사간원 관원들에게 자유분방한 특혜를 준 것은 왕에게 직언을 올리는 간신(諫臣)이었기 때문이었다.

10명도 안되는 사간원 관원들은 목숨을 내놓고 임금에게 직언해야 하는 것이 그들의 직무였다. 잘못했다간 목이 달아날 판에 어지간한 배짱과 배포가 아니면 바른말 하기가 쉽지 않았다. 사간원 관원들의 배포를 키우기 위해 자유분방한 사고와 행동을 권장해 주었다. 절대권력인 왕과 맞짱 떠야 하는 직책임을 감안, 어떤 규제나 속박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판단했던 것이다.

아무리 사명감이 투철해도 자신의 상관을 탄핵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기 때문에 사간원은 의정부나 6조에 속해 있지 않은 독립기관이었다. 정승이나 판서들과 대등한 입장에서 정치적 발언을 할 수 있게 한 것이다. 사간원 관리가 좌천될 경우 최소한 지방으로 내쫓지 못하게 했으며 파직이 되더라도 파직 이후 복직되기 전까지를 근무 기간에 합산, 승진에 불이익이 없도록 신분을 보장해주었다.

격심한 당쟁에도 조선이 500년을 지탱한 것은 언로가 막히지 않고 바른말 하는 신하가 많아야 나라가 망하지 않는다는 치도(治道)가 살아있었기 때문이었다. 바른말 언로를 틀어막고 조국 사태를 폭로한 언론에 재갈을 물리는 언론통제를 강행하는 시대착오적 직언 궤멸 정치에 나라가 제대로 지탱하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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