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밤 꽃뱀이 그림을 그렸네요. 이를테면 압착화 같은
거죠. 열흘 붉은 꽃 없다는데 이 꽃은 그보다 훨씬 빨리
사라질 듯하네요. 속력과 폭력이 앞 다투는 아스팔트 위에
서 압착의 자세를 기리는 이 딱히 없을 테니까요. 어쩌면
꽃잎이 아니라 단풍잎일지 몰라요. 가을은 뭍것들이 마지
막 피를 토하는 계절, 억새풀 따위에 갈아온 칼날 같은 혓
바닥이 어둠 속에서 번쩍! 한 번은 빛을 발했을 테니까요.
그러나 약자에게 독기란 겨우 제 살 도려내는 것일 뿐, 제
안으로 살기를 품어버리는 힘일 뿐, 머리 터진 꽃뱀은 마
지막으로 제 몸을 돌아봤겠죠. 육체는 습속처럼 꿈틀거리
고 어찌할 수 없음을 깨달은 채 꼬리로 입을 막아 울음을
가두었겠죠. 욱여넣듯이, 그가 다음 생을 꿈꾸었는지는 모
르겠어요. 다만 몸뚱아리가 전부인 것들이 또아리 트는 이
유를 알 것 같네요.

* 꼬리를 삼키는 자




<감상> 우로보로스는 꼬리를 물고 순환, 곧 윤회하는 상태로 존재한다. 처음과 끝, 삶과 죽음, 개화와 시듦은 애초에 경계가 없다. 몸의 존재는 잠시 보여주고 있을 뿐 무시무종(無始無終)의 상태에 놓여 있다. 꽃뱀이 아스팔트에 압착하여 그림을 그리듯, 단풍들도 한 번 포효하고 떨어지고 억새풀도 어둠 속에서 잠깐 빛을 발한다. 동물이든 식물이든 인간이든 몸속에서 습속(習俗)처럼 몸부림치다 사라질 뿐이다. 삶에 미련을 가진 채 슬픔과 울음을 욱여넣고 다음 생을 꿈꾸고 있을 것이다. 다음 생은 약자도 아닌, 살기를 품은 것도 아닌 오롯이 간절함이 담겨 있기를 빌며 똬리를 튼다.<시인 손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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