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연일 전 포항대학교 사회복지과 교수·시인
배연일 전 포항대학교 사회복지과 교수·시인

신문이나 방송을 볼 때마다 이건 아닌데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그건 적절한 우리말이 있는데도 외국어를 사용하거나 고위 공직자와 정치인이 일반 국민은 좀체 사용하지 않는 말을 쓰기 때문이다.

예컨대 ‘사실(진상)’이라 하면 될 것을 ‘팩트(fact)’, ‘청사진(구상도, 미래상)’을 ‘로드맵(Road Map)’, ‘위험(위험성)’을 ‘리스크(risk)’, ‘정보’를 ‘팁(tip)’, ‘보살핌(관리)‘을 ’케어(care)’, ‘틀, 구도(構圖)’를 ‘프레임(frame)’, ‘단순하다(간단하다)’를 ‘심플(simple)하다’, ‘요리 명장(요리사)’을 ‘셰프(chef), ’마음(생각)’을 ‘마인드(mind)’, ‘노면 살얼음’을 ‘블랙 아이스(Black ice)’, ‘말씨(단어 선택, 자구)’를 ‘워딩(wording)’으로 쓰고 있다. 우리말로 해도 충분히 뜻이 통한다면 영어를 쓰지 말아야 할 게 아닌가. 그런데도 일부 사람들이 영어를 즐겨 쓰는 것은 잘못된 습관이거나 허세를 부리는 게 아닐까 한다.

또한, 정치인이 어떤 만남을 갖게 되면 언론은 하나같이 ‘회동(會同)’이라는 말을 쓴다. ‘회동’은 ‘일정한 목적으로 여러 사람이 한데 모임’을 이르는 말이지만 한자어다. 따라서 ‘회동’ 대신 순수한 우리말인 ‘모임’을 쓰면 된다. 그런데도 언론이나 정치인은 오로지 ‘회동’이라는 말만 사용하고 있다. 따라서 이제부터라도 ‘회동’ 대신 순화한 용어인 ‘모임’을 사용했으면 한다.

어쨌든 정말 부득이한 경우가 아니라면 외국어(특히 영어)를 쓰지 않도록 노력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특히 영향력이 큰 신문과 방송이 순화된 우리말 쓰기에 앞장서 주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한편, 고위 공직자와 정치인이 쓰는 말을 유심히 들어보면 일반 국민이 쓰는 말과 동떨어진 언어를 사용하는 것을 보게 된다. 그 대표적인 예가 바로 ‘송구하다’이다. ‘송구하다’는 “두려워서 마음이 거북스럽다.”라는 뜻을 나타내는 말인데, 이와 함께 쓸 수 있는 말로 ‘죄송하다’와 ‘미안하다’가 있다. 우리가 알거니와 일반 국민은 ‘송구하다’는 말은 좀체 쓰지 않는다. 거의 모두가 ‘죄송하다’나 ‘미안하다’를 쓴다.

그런데 고위 공직자와 정치인은 그렇지 않다. 사과해야 할 상황이 생기면 그들은 마치 서로가 약속이라도 한 듯이 십중팔구 ‘송구하다’는 말을 사용한다. ‘미안하다’나 ‘죄송하다’는 말이 우리 국민에게 친숙한 언어인데도 말이다. 우리가 알거니와 ‘송구하다’라는 말이 더 고상하거나 품격이 있는 것도 아닌데 그들은 왜 그 말을 고집하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송구하다’는 말보다는 우리 국민이 일상적으로 쓰는 ‘미안하다’와 ‘죄송하다’를 쓰는 게 국민의 가슴에 훨씬 잘 와 닿으리라고 본다. 그러므로 고위 공직자와 정치인은 지금부터라도 국민에게 친숙한 언어를 썼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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