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어지는 대피소 생활에 후유증·잔병 치레 잦아

포항 흥해실내체육관 내부에 설치된 텐트 모습.
지난 2017년 11월 15일 경북 포항에서 발생한 지진으로 이재민들이 3년 3개월 동안 텐트 생활을 하고 있는 포항시 북구 흥해실내체육관에는 설 명절 임에도 적막감이 감돌았다.

그날, 규모 5.4 지진으로 땅이 흔들리면서 집이 부서질 듯한 굉음에 황급히 집을 나온 이후 이재민들은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

그 사이 4번의 설 명절을 보냈다. 첫해와 이듬해는 정부와 지자체 등에서 관심을 보였지만 차츰 잊혀 가면서 찾는 발길도 뜸해졌다

대부분 고령인 이재민들은 지진 후유증으로 건강이 나빠진 상태다.

체육관 생활이 불편하고 쓸쓸한 데다 집으로 갈 수 있다는 희망도 희미해져 고통스런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특히 명절에는 자식들과 함께했던 행복한 명절에 대한 기억을 떠올리며 속울음을 삼키고 있다.

“이번 설 명절은 아무도 안 찾아오고 다들 자리를 비웠어”

10-4번 텐트를 쓰고 있는 이춘석(76) 할머니는 씁쓸한 표정으로 이같이 말했다.

지진 발생 이후부터 흥해실내체육관에서 지금까지 지내온 이 할머니는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4일 포항시 북구 흥해실내체육관은 빈 텐트만 가득한 채 텅 비어 있었다.

입구에서 교대근무를 하며 자리를 지키고 있는 공무원 2명을 제외하곤 적막감이 감돌았다.

바깥에서 볼일을 보고 들어온 이 할머니만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이 할머니는 그간 대피소 생활을 떠올리자마자 눈시울이 붉어졌다.

“반파된 집을 700만원으로 멀쩡하게 고친다는 것이 말이 안되지...다들 도둑놈이야”
포항지진 당일부터 흥해실내체육관 대피생활을 이어온 이춘석 할머니.
우선, 할머니는 대피소 생활을 계속 이어오는 이유로 자신의 자택이 여전히 정상적으로 수리되지 않았다는 점을 꼽았다.

한미장관맨션 인근에 단층 주택에서 살고 있던 할머니는 갑작스런 지진으로 집을 놔둔 채, 지진 당일부터 체육관서 대피생활을 이어왔다.

2남 3녀 자식들이 십시일반 돈을 모아 ‘선물’한 주택집이 하루 사이에 금이 가고 사람이 살 수 없는 공간이 되자 허탈했다고 한다. 반파 판정을 받고 수리를 받았지만 수리 이후에도 집은 예전 모습을 찾지 못했다.

정돈된 타일은 어디 가고, 매끄럽지 않은 돌이 그 자리를 차지했고 내부에 금이 그대로 간 채 도배를 하다 보니 벽지도 찢어져 있었다.

분통이 터진 할머니는 수소문 끝에 수리업체를 직접 찾아가 항의하기도 했지만, 돌아온 답은 “수리를 했으니 어쩔 수 없다”라고 했다.

고령의 나이에, 길어지는 대피소 생활 속에서 잔병치레도 이어졌다.

가장 큰 점은 마음의 병. 현재 체육관에는 상시 대기 의료진이 없는 상태다.

백년해로를 약속했던 남편은 지진 발생 1년 후 쯤에 갑작스레 숨을 거뒀다.

할머니는 “남편도 지진으로 피해 본 상황에 정신적으로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고 설명했다.

이재민들 사이에서도 사망자가 발생했다.

불과 1년 전, 동네 언니였던 A씨(78)와 B씨(82)가 차례대로 세상을 떠났다. A씨의 사망원인은 골수암이고 B씨는 노환이라고 했다.

주위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이 할머니는 남는 게 ‘악’밖에 없다고 한다.

체육관 내부에서 지내는 것 자체가 스트레스라는 것.

한 달 전 만해도 비가 많이 왔을 때 내부로 물이 새어 들어와 좌우 텐트 사이로 물이 흘렀다고 증언했다.

최고령인 86세 C모 할머니도 남아 있는 대피소 생활 속에서 할머니는 이제 보상이 완전히 이뤄져 예전 생활을 다시 하고 싶다는 바램뿐이다.

이춘석 할머니는 “남아 있는 할머니들이 자꾸 마음이 힘들어 우신다”며 “제대로 된 보상을 통해 지진 이전의 삶을 살고 싶다”라고 말했다.

포항시 관계자는 “오는 4월에 지진특별법 제정과 관련된 보상금이 지원될 계획으로 안다”며 “정부 차원의 보상 이후에 남아있는 이재민들께서 거취를 결정하시리라 보고 있다”라고 말했다.

한편, 흥해실내체육관은 지진 초기 1000여명이 넘는 대규모 인원이 거주했다. 이후 LH임대주택 이동한 24세대와 지인과 자녀들의 집으로 옮겨간 인원들을 빼고 현재 기록상 64세대 158명이 남아있다.

시는 이 중에서 실거주자는 20여명 안팎으로 집계하고 있다.

황영우 기자
황영우 기자 hyw@kyongbuk.com

포항 북구지역, 노동, 세관, 해수청, 사회단체 등을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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