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식 포항지역위원회 위원·시인
이상식 포항지역위원회 위원·시인

사마천이 집필한 ‘사기’는 중국 역사상 중요한 기록이다. 흔히 ‘25사’라 일컫는 중국 정사의 선두 타자이자 분서갱유로 사라진 고대사 연결 고리인 탓이다. 또한 새로운 편집 체제인 기전체 효시로서 중국사 3대 명저로 평가된다.

사기는 방대한 분량이다. 도합 130권으로 53만 자에 이른다. 그중 백미는 ‘열전’이다. 인간성 본질을 예리하게 탐구한 정수. 평범한 인재도 다루었다. 사마천은 다섯 명을 선택해 ‘자객 열전’을 편성했다.

언젠가 중국은 자객 열전을 드라마로 제작할 경우 가장 매력적인 캐릭터를 조사했다. 제일 멋진 자객은 ‘형가’가 뽑혔다. 진시황 암살을 다룬 영화 ‘영웅’이 만들어진 모티브가 됐다. 어복장검 주인공 ‘전제’는 독창적 자객으로 나왔다. 물고기 배에 비수를 감춰 오나라 왕을 살해했다.

백정 출신으로 효도를 다한 후에 한나라 재상과 맺은 약조를 지킨 ‘섭정’은 감동적 자객으로 선정됐다. 잃은 영토를 되찾은 노나라 장수 ‘조말’과 제환공 간에 얽힌 협박 일화도 나온다. “십 보 안의 거리에 있으면 누구든 죽일 수가 있다.” 당시 조말이 남긴 말로서 영화에 인용된 대사.

사마천은 진시황 외모도 서술했다. 매부리코에 길게 찢어진 눈매 그리고 새가슴에 승냥이 같은 허스키 목소리를 가졌다고. 또한 자객 형가가 지도에 숨긴 칼로 시황제를 죽이려는 장면을 묘사했다. 기둥 사이로 달아나는 절대 권력자와 뒤쫓는 킬러를 그렸다.

나는 ‘사기’를 읽을 때마다 그런 생각이 든다. 예술가 창작열은 절대 심연의 바닥에서 꽃피는 법이라고. 청각을 상실한 베토벤과 동성애자 비애감에 빠졌던 차이코프스키는 처절한 상황 속에서 불후의 명곡을 남겼다. 사마천도 그러하다. 남성을 거세당한 치욕은 명작을 출산했으니 말이다.

자객은 시쳇말로 테러리스트. 어떤 정치적 목적을 가지고 사람을 죽이는 공통점을 가졌다. 물론 불특정 다수를 겨냥하는 요즘 테러는 과거보단 한층 과격해졌다. 세계를 경악시킨 9·11 테러는 단적인 실례.

1930년대 미국의 복합기업 아람코는 사우디아라비아 다란에 진출한다. 그들은 유전을 발굴하고자 정착촌 건설에 나선다. 예멘 태생 벽돌공 ‘모아메드 빈라덴’은 공사장 인부. 그는 미군 기지에 붙어 성공하는 방법을 알았다. 일본 소니의 모리타나 영국 리버풀의 존 레넌에 비견된다.

훗날 비행기 추락 사고로 숨진 그는 22명 아내와 54명 자녀를 두었다. 알카에다를 조직한 ‘오사마 빈라덴’도 그들 가운데 하나. 이 소규모 단체는 아프간을 침공한 소련을 몰아내는 작은 역할을 하였다. 알카에다가 ‘비행기 작전’이라 명명한 9·11 테러는 빈라덴의 독창성이 발휘된 사건. 테러범 19명이 항공기 4대를 탈취해 미국 펜타곤과 세계무역센터 건물을 파괴했다.

올해는 9·11 테러 20주년. 브라운대 연구에 따르면 최근 20년간 미국의 대테러 전쟁 비용은 6조 4000억 달러에 이른다. 국가 채무로 충당돼 이자 부담도 천문학적 액수. 국내외 여론을 무릅쓰고 아프간 철군을 단행한 바이든 결정도 이와 연관됐다.

빈라덴 사살 이후 알카에다를 이끈 알자와히리는 세계 최대 현상금 수배 인물. 사견을 전제로 아프간 사태는 일견 종교 전쟁의 성격도 내재된 듯하다. 기독교 미합중국과 이슬람 탈레반이 격돌한 성전. 아무튼 선량한 생명이 다치는 ‘묻지마 테러’는 근절됐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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