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병진 경주지역위원회 위원
서병진 경주지역위원회 위원

우리말에 ‘본데’라는 말이 있다. 보고 배운 예의범절이나 솜씨, 지식 등을 뜻한다. 젊거나 어린 사람이 경우 있고, 눈썰미 좋고, 재바르면 ‘본데 있는 사람’이라고 한다. 교양 있는 가문에서 보고 배운 바가 있다는 뜻, 보고 배워서 예의를 잘 차리고 어긋남이 없는 것이다. 지식과는 거리가 있다. 역으로 ‘본데없다’는 보고 배운 바가 없다, 어른들이나 주위로부터 보고 들어 배운 예절이 없다는 뜻으로 버릇없이 굴거나 건방을 떨 때 쓰는 말이다. “어디 어른 앞에서 본데없이 구느냐?, 배울 만큼 배운 사람이 왜 그리 본데없이 구는가?” 할 때 쓰는 말이다. 당사자에게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라, 집안의 윗길, 아랫길까지를 알아보게 된다. 굽은 지팡이는 그림자도 굽어 보인다고 했다. 지팡이가 굽어 똑바르지 않은데 그림자가 쪽 곧을 리 없다. 웃어른의 바르지 못한 행실이 자손에게까지 드리워진다.

‘배운 사람’이란 말이 있다. 배운 사람에는 많이 배운 사람과 잘 배운 사람이 있다. 우선 배운 사람이란 학벌이 좋은 사람, 지식이 있는 사람, 많은 기술을 지닌 사람을 말한다. 어떻게 사는 것이 올바르게 사는 것인가의 문제보다 얼마나 많이 알고 있는가, 얼마나 능력을 지니고 있는가를 중심으로 평가한 말이다. 잘 배운 사람은 배운 바를 모두에게 유익하게 쓰는 사람, 인간적으로나 도덕적으로 상하좌우의 질서를 지킬 줄 아는 사람일 것이다. 잘 배운 사람은 생활하면서 견문을 넓혀 얻어진 ‘본데 있는’ 사람에 가깝다. 많이 배워서 많이 아는 사람도 필요하지만 배운 것을 모두를 위하여 아름답게 쓸 수 있는 사람, 한 인간으로서 사회생활을 아름답게 할 수 있는 사람이 더 필요하다. 잘 배운 사람이 세상을 아름답게 만들어 간다. ‘본데’ 있는 사람은 지식의 양이 많고 적음과는 거리가 있다. 배울 만큼 배운 사람과 본데 있는 사람과는 다르다. 많이 배워서 많이 아는 사람과 본데 있는 사람이 일치하지 않는다.

아파트 엘리베이터에서 택배 A가 턱스크에 휴대폰으로 통화를 하는 B에게 마스크를 바로 하시면 좋겠다고 청했다. B는 남의 아파트에서 택배 주제에 이래라저래라 간섭한다고 화를 냈다. B는 아무리 좋은 아파트에 살아도 본데없는 사람이요, 학벌이 높고 지식이 많아도 못 배운 사람이다. ‘아, 예’하고 ‘미안합니다’ 하면 된다. B는 스스로 본데없는 사람, 못 배운 사람으로 자처한 것이다. ‘본데’와 ‘배운 지식’은 다르다.

어느 시골 할머니가 버스 정류소에서 산나물을 뜯어서 돌아가는 도시 할머니의 나물 보따리를 보고 “어디서 나물을 했어? 많이도 했네?”라고 했다가 된통 당했다. 대답을 듣고자 한 말이 아니다. 그냥 한 말이다. “어디서 나물을 했어? 왜 반말을 해.? 나도 내일 모래면 칠십인데” 무심코 한 말인데 도시 할머니가 과잉 대응이다. 사람됨의 문제다.

사람에게는 ‘머리’, 동물들에게는 ‘대가리’라는 말을 쓴다. ‘대가리’가 표준말이다. 그래도 ‘소대가리 곰탕’보다는 ‘소머리곰탕’이 듣기 좋고 교양이 있어 보인다. 곤충의 몸을 ‘머리, 가슴, 배’ 세 부분으로 나눈다. ‘대가리, 가슴, 배’는 아니다. 할머니께서 고등어 머리를 바싹 구워 잡수시면서 ‘어두일미’라 하셨다. 고등어 대가리보다는 고등어 머리가 듣기 좋았다. 말을 부드럽게 골라 쓰면 마음도 고와진다. 교양이 돋보인다. 모진 말을 골라서, 모질게 억양을 높이는 지도자나 어른들이 많아서 탈이다. 쥐 패고 싶어도 말을 아끼자. 많이 배운 사람보다는 잘 배운 사람, ‘본데 있는’ 사람이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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