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울트라 러너다’ 책 표지.
달리기는 인간이 수행하는 모든 운동의 기본이다. 그런 달리기의 정점을 상징하는 장거리 종목으로 마라톤이 있고, 마라톤을 넘어 인간의 한계와 더불어 삶 자체를 보여준다고 일컬어지는 울트라 러닝이 있다. 여기 이십 대 중반의 나이에 죽음을 거부하고 달리기 시작해 마라톤을 넘어 울트라까지 쉼 없이 달려온 한 사람이 있다. 세계 정상급 울트라 러너 심재덕이다.

대우조선해양에서 34년째 현장 노동자로 일하는 그는 28년 전 숨을 쉬기 어려워서 병원을 찾았다가 기관지확장증 진단을 받고 수술 대신 달리기를 선택했다. 사내 체육대회 우승에서 시작된 그의 달리기는 마라톤으로 이어졌고, 42.195킬로미터의 마라톤 풀코스를 3시간 이내에 완주하는 서브 스리(sub-3)를 대한민국 최초로 100회 달성했다. 지금은 무려 300회를 넘어섰다. 그의 달리기는 트레일 러닝과 울트라 러닝으로 계속 뻗어 나갔다.

그는 미국의 MMT 100마일과 웨스턴 스테이츠 100, 일본의 하세쓰네 산악 마라톤 대회과 노베야마 고원 울트라 마라톤 대회, 프랑스의 UTMB, 이탈리아의 토르 데 지앙 등 세계적인 울트라 트레일 러닝 대회를 수없이 경험하며 우승과 분루를 번갈아 맛봤다.

심재덕의 실력과 명성은 울트라 트레일 러닝의 저변이 넓고 역사가 깊은 미국이나 일본 등 해외에서 더 빛난다. 싱가포르 국제마라톤 대회에서는 환희에 차 결승선을 통과하는 모습이 카메라에 포착됐고 그 사진은 다음 해 같은 대회의 대표 홍보 이미지가 됐다. 일본 울트라 러너들의 성지라는 하세쓰네 산악 마라톤 대회에서는 누구도 넘지 못했던 마의 8시간 벽을 깨며 대회 최고 기록을 경신했고, 노베야마 고원 울트라 마라톤에서도 유력 일본인 우승 후보들을 제쳐놓고 당당히 우승을 차지했다.

2006년 미국에서 열린 MMT 100마일 대회에서 당시 세계 최고의 울트라 러너 칼 멜처를 제치고 이룬 우승은 그의 이력에서도 백미다. 칼 멜처의 우승을 미리감치 예상했던 대회 주최자와 스태프들은 무명의 한국 선수가 세운 기록을 보고 어안이 벙벙했다. “17시간 40분 45초.” 그것은 2006 MMT 100의 우승을 넘어 역대 MMT 최고 기록이었던 것이다. 심지어 이 기록은 2021년 현재까지도 깨지지 않고 있다. 그런 그를 인터뷰하기 위해 『뉴욕 타임스』와 BBC에서는 멀리 거제까지 직접 찾아오기도 했다.

그의 달리기에 항상 승리와 영광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발에 부상을 입어 신발이 벗겨지지도 않는 상태에서 발을 질질 끌며 겨우 결승점을 통과했던 2006년 미국의 웨스턴 스테이츠 100도 있고, ‘다시는 울트라 같은 건 안 한다!’며 마지막 구간에서 완주도 포기한 채 살아서 돌아가기만을 바랐던 2011년 이탈리아의 토르 데 지앙도 있다. 이렇게 아쉬움 가득한 실패담까지 솔직하게 털어놓는 가운데 그는 왜 사람들이 아무런 세속적인 대가 없이 그런 엄청난 고통을 기꺼이 감수하며 울트라에 도전하는지 보여준다.

50대 중반을 바라보는 지금도 우승 후보에 이름을 올리며 왕성하게 활동 중인 그의 한 걸음 한 걸음은 그대로 한국을 넘어 세계 울트라 트레일 러닝의 역사가 되고 있다. 그의 달리기가 어디까지 갈 것인지 지켜보는 응원의 눈길을 뒤로 한 채 그는 “한계는 내가 정한다. 죽음만이 나를 멈출 수 있다.”라며 오늘도 달리고 있다.

마지막 장인 “트레일 러닝의 맥”에서는 트레일 러닝을 위해 필요한 마음가짐, 기본 자세, 각종 장비, 영양 보충제 등을 별도로 정리해서 트레일 러닝 지침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했다. 심재덕의 트레일 러닝 레슨인 셈이다. 여기서 말하는 트레일 러닝에 임하는 마음가짐, 달리기를 위한 신체조건, 심리적 두려움을 극복하는 방법 등은 스포츠 이론서가 아니라 저자의 직접 경험에서 우러나온 것이기에 어떤 과학적 논리보다 설득력 있다. 100km의 거리, 누적 고도 8,000m라는 무시무시한 숫자 앞에서 기 죽지 않는 챔피언만의 노하우를 전수해준다.

트레일 러닝의 기본이 되는 호흡, 어깨, 팔, 다리의 자세에 대한 설명은 물론 달리기 능력 향상을 위해 평상시 수행해야 할 기초 훈련의 중요성에 대해서도 언급한다. 그가 사용하는 장비와 영양 보충제도 빼먹지 않고 나눈다. 특히 그가 “달리면서 무엇을 먹고 마시며 어떤 영양제를 섭취하는지”에 대해 구간별로 상세히 밝혔으니 정보에 목마른 트레일 러너들에게 큰 도움이 될 것이다.

곽성일 기자
곽성일 기자 kwak@kyongbuk.com

행정사회부 데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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