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식 포항지역위원회 위원·시인
이상식 포항지역위원회 위원·시인

교통 신호등과 표지판은 자주 접하는 장치이자 사회 질서의 표상이다. 또한 아라비아 숫자처럼 만국 공통의 기호다. 적색은 서라는 뜻이고 녹색은 가라는 의미다. 이는 국제 협약에 의한 세계 표준으로 각국이 동일하다.

한데 서로 다른 도로 표시 체계가 하나 있다. 다름 아닌 ‘정지 표지판’이 주인공. 한국의 경우 빨간색 바탕에 하얀색 글씨로 ‘정지(STOP)’라 쓰인 팔각형 형태다. 유엔에서 정한 표준 양식임에도 상당수 국가는 노란색 팔각형을 쓴다. 그 사연이 황당하다. 일순 쓴웃음이 나온다.

20세기 초엽에 미국은 육로 이동 표준화를 마련한다. 그전엔 도시별 교통 시스템이 제각기 달랐다. 뉴욕 맨해튼은 녹색 불빛에 멈추고 황색에 출발하기도 했다. 국제 협약은 미국 체계를 본받아 교통 표준을 정했다. 당시 노란색 팔각형 표지판도 포함됐다. 미국은 밤에 식별이 어렵다는 사유로 빨간색 이용을 금지했다. 그 때문에 정지 표지판은 노란색이 채택된 것이다.

그런데 미국이 교통 정책을 바꿨다. 노란색 정지 표지판을 빨간색으로 변경했다. 위험을 강하게 나타내고 새로운 도료를 개발했다는 강변. 이에 따라 유엔은 재차 표지판 문제를 다룬다. 결국 노란색을 빨간색으로 고쳐 세계 표준으로 삼았다. 대부분 나라는 이를 따르지 않는다. 그냥 원래대로 노랑을 사용한다. 교차로 정지 표지판을 보면 오만한 독불장군이 떠오른다.

로마 제국의 국가적 전통은 서양 문명에 커다란 영향을 끼쳤다. 프랑크 왕국은 포스트­로마이고, 청교도가 건설한 미합중국은 포스트­포스트­로마로 비견된다. 특히 미국인은 막연히 로마를 동경했고 그 공화제를 모델로 여겼다.

미국 저명인사는 신문에 칼럼을 기고하면서 로마의 문필가 이름을 필명으로 썼다. 유명한 변론가인 카토·키케로·브루투스를 빌렸고 해밀턴은 ‘푸블리우스’란 펜네임을 즐겼다. 독립 전쟁 시절 동맹국 확보를 위해 프랑스를 방문한 프랭클린은 찬사를 받았다. 고대 로마 파비우스 같은 인물이라고. 변호사 제임스 오티스는 로마인 의복인 토가를 입고 연설을 하기도 했다.

독재자 무솔리니는 로마 군대를 철저히 흉내 냈다. 로마 시대 ‘권표’를 따서 파시즘 이념을 칭했고 로마식 경례를 도입했다. 또한 사단 대신 군단이라 일컫고 최정예 부대를 ‘제10군단’이라 명했다. 카이사르가 아낀 심복 부대다.

미국은 1898년 스페인과 맞붙은 전쟁에서 승리해 제국으로 등극했다. 하와이는 합병됐고 쿠바는 조건부 독립했다. 괌과 필리핀 그리고 푸에르토리코는 미국령이 되었다. 또한 쿠데타를 조직해 파나마 운하도 장악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 미국 트루먼 대통령은 해외 정책을 수정한다. 대규모 식민 지배는 완화하고 소규모 섬과 기지에 대한 통제는 강화한 것이다. 이는 합성 소재 개발로 전략적 원자재 수요가 줄었고, 항공술과 무선 통신 발달로 영토 점령 없이도 네트워크가 작동한 탓이다.

뉴욕 맨해튼 엠파이어스테이트빌딩은 미국 제국의 상징. 라틴어 ‘임페리움’이 어원인 영어 ‘엠파이어’는 제국이란 의미다. 오늘날 미국은 특별한 지위를 가진다. 국제 표준을 면제 받는 유일한 패권국. 프랑스가 고안한 미터법도 인정치 않는다. 이는 여타 방국들 부담으로 작용한다. 분량 단위를 혼동한 보잉기가 급유를 잘못해 참사가 일어나기도 했다.

저작권자 © 경북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