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식 포항지역위원회 위원·시인
이상식 포항지역위원회 위원·시인

인류가 주식으로 삼는 가장 중요한 곡물은 밀과 쌀이다. 이어 옥수수와 감자가 뒤를 잇는다. 밀은 제일 많이 생산되고 쌀은 최초로 경작된 곡식. 또한 가장 먼저 기른 동물은 늑대로 추정한다. 이는 개로 진화해 사냥에 도움을 주고 잔반을 얻어먹었다. 대개 무리의 사회성을 지닌다.

인간은 오랜 세월 수렵 채집 생활을 하였다. 10만 년쯤 전부터 지구촌 곳곳을 누볐다. 당시 빙하기 한랭 환경은 동물들 서식지로 적합해 사냥하기에 좋았다. 석기인은 시간이 여유로워 소위 ‘석기 시대의 풍요’를 누렸다.

오스트레일리아 고고학자 차일드는 선사 시대를 역사의 연장선으로 인식했다. 기원전 1만 년쯤 인류는 정착 농경민이 되었고 이는 문명사 전환점이 된다. 이런 농업 혁명은 도시 혁명과 더불어 18세기 산업 혁명만큼 영향을 끼쳤다고 주장한다.

초기 농업계 역사에서 주목할 사건은 동식물이 사람에 의지해 번식을 유지한 점이다. 그들은 생식 독립성을 잃고 순화됐다. 요컨대 야생을 버리고 인간과 지내면서 다음 세대를 생산했다. 볏과 식물인 밀·쌀·옥수수는 완전히 순화된 상태이고 야생 조상이 멸종한 소도 그러하다.

밀은 기원전 7천 년쯤 메소포타미아 지방에서 처음 재배됐다. 중앙아시아를 거쳐 중국에 전해졌다. 중국이 밀을 농사지을 즈음 이집트는 밀가루 발효 빵을 화덕에 구웠다. 이를 보면 고대 이집트인은 정말 영리한 민족이 아닌가 싶다.

밀을 가공해 만든 대표 음식은 빵과 국수다. 오늘날 빵은 서양인이 선호하는 편이고 면은 동양인이 즐기는 먹을거리. 국수는 내력이 유구하다. 소설 ‘서유기’ 배경인 화염산 골짝에서 2500년 전의 국수 유물이 발견됐다. 설거지를 깨끗이 하지 않은 탓에 이뤄진 고고학적 성과다.

중국은 가히 국수의 천국이다. 무려 1200종 넘는 가짓수. 다양한 국수 뽑기와 조리법이 생겼다. 수타면은 일종의 혁명이다. 현란한 손놀림은 탄성과 점성이 높은 면발이 탄생했다. 한국 라면의 기원은 일본 라멘. 이는 중국 ‘라미엔’이 뿌리로 수타 방식 우육면을 뜻한다. 간쑤성 라미엔이 유명하다.

우리는 삼국 시대부터 국수를 먹은 것으로 추정한다. 고려 때는 잔치 같은 특별한 날에 대접했다. 이는 ‘고려도경’에 나온다. 한국 전쟁 이후 미국의 대규모 밀가루 원조로 흔하게 접했다. 국수 문화는 경북 대구 지역이 발달했다. 지방별 독특한 요리도 나왔다. 포항 모리국수가 일례다.

일본을 상징하는 국수는 우동이다. 통통한 면을 삶아 갖가지 고명을 얹어 먹는다. 동화 ‘우동 한 그릇’은 제목만으로 일본인 체취가 느껴진다. 가난한 엄마와 두 아들이 우동 한 그릇으로 나누는 훈훈한 가족애가 뼈대. 덧붙여 그들 모자를 정성껏 배려하는 주인장 뜨거운 인간애를 그렸다.

매년 연말이 되면 내가 일독하는 책이기도 하다. 짧은 글이라 두세 시간만 펼치면 된다. 삶이 팍팍해 가슴 먹먹한 감정이 그리울 때는 나도 모르게 이 도서를 잡는다. 마지막 책장을 넘기며 카타르시스에 젖는다. 2007년 이맘께 구입했으니 아마 열 차례 넘게 읽었다.

동화 ‘우동 한 그릇’은 일본 열도와 세계를 울린 명작. 눈물이 마르고 감동에 목마른 누군가에게 흔쾌히 권한다. 가끔 주인장 부부 목소리가 귓전에 아련하다. “고맙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딱 세 번 나온다. 독자 여러분과 나누고 싶은 인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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