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식 포항지역위원회 위원·시인
이상식 포항지역위원회 위원·시인

그리스어 ‘카타르시스’는 정화를 뜻한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저서 ‘시학’에서 언급했다. 비극을 보며 흘리는 눈물이 마음을 순화해 평정심을 갖는다고 말한다. 인간의 심상에 깊은 울림을 주는 기제가 희극이 아닌 비극인 점이 흥미롭다. 웃음보단 슬픔이 원초적 본능이란 의미일까.

고대 그리스 3대 비극 시인으로 아이스킬로스·소포클레스·에우리피데스가 꼽힌다. 또한 대문호 셰익스피어 4대 비극 작품은 햄릿·리어왕·맥베스·오셀로다. 한결같이 주인공을 축으로 펼쳐지는 애틋한 스토리가 공감을 자아낸다.

사람이 정서적 눈물을 흘리는 경우는 크게 두 가지다. 기쁠 때와 슬플 때가 그러하다. 눈물은 98퍼센트가 물이고 소량의 단백질과 식염이 함유된 등장액. 거기에 우리의 감정이 섞이면서 각별한 의미를 갖는다. 흔히 거짓된 눈물을 ‘악어의 눈물’이라 칭한다. 악어는 느낌이 없는 야수다. 오직 인간만 감정의 눈물을 흘린다.

매년 옥스퍼드 영어 사전은 시류가 반영된 ‘올해의 문자’를 선정해 호응을 얻는다. 언젠가 이모티콘 ‘기쁨의 눈물’을 흘리는 얼굴이 선정됐다. 이는 최초로 뽑힌 그림 문자. 아래로 처진 눈썹과 감긴 눈에서 흐르는 커다란 눈물방울은 행복한 표정이 넘친다. 당시 사용 빈도가 제일 높았다.

인생은 희로애락의 되풀이. 슬픔도 소중히 보듬을 삶이다. 울음은 비애를 직시하는 태도의 하나다. 노벨상 작가인 코엘류는 스스로 울보라 고백한다. 영화를 보다가 혹은 전화를 하다가 심지어 노을을 대하며 눈물을 흘린다는 것이다.

애니메이션 ‘인사이드 아웃’은 도시로 이사한 소녀의 불안한 심리를 그렸다. 주인공 머릿속엔 기쁨·슬픔·분노·까칠·소심 다섯 감정 친구가 산다. 그중 슬픔의 가치를 중시한 점이 인상적. 벗들은 라일리가 슬픔을 잊도록 노력하나 결국 치유에 성공한 감정은 슬픔이란 줄거리다.

눈물은 애수와 어울린다. 일전에 가슴이 짠해지는 유적 사진을 보았다. 고대 이집트 칼라 도판 역사서. 기원전 2055년 무렵 몬투호텝 2세는 재통일을 이루면서 중왕국 시대가 펼쳐진다. 그의 왕비 카위트가 묻힌 석관에 새겨진 그림이 애절하다. 어미소 앞다리엔 송아지가 묶였고 누군가 젖을 짜는 광경. 한데 소가 눈물을 흘린다.

아날로그 세대 상징인 손수건은 그 슬픔과 눈물을 위로하는 휴대품. 자주 등장하는 예술 소품이기도 하다. 영화 ‘인턴’엔 여러 차례 나온다. 최고로 멋진 남주의 대사. “손수건은 남에게 빌려주고자 필요하다. 눈물 흘리는 여성을 위해. 신사의 기본 매너이지.”

‘천장지구 2’는 중화주의가 물씬 풍기는 느와르. 부상당한 여주는 남주가 건네준 손수건을 간직하다가 밀항선을 타면서 선창 기둥에 동여맨다. 또한 영화 ‘필라델피아’엔 법정 여성 증인이 눈물을 훔치자 변호사가 손수건을 꺼낸다.

근자에 미국 퓨리서치센터가 세계 17개 선진국을 대상으로 조사했다. ‘삶에서 가장 가치 있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질문. 14개국이 선택한 압도적 1위는 가족이다. 근데 한국은 물질적 행복을 꼽았다.

일본 동화 ‘우동 한 그릇’은 가난한 모자와 우동집 주인이 빚는 아름다운 이중주. 공명당 오쿠보 의원이 국회에서 낭독한 감동의 풀피리이자, 울지 않고 배기는지 시험 삼아 읽어 보라고 일본경제신문이 추천한 눈물샘. 역시나 손수건 얘기가 나온다. 연말연시에 그런 손수건 필요한 이웃도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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