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병진 경주지역위원회 위원
서병진 경주지역위원회 위원

세월은 같은 속도로 흐르지 않는다. 나이에 따라 지루함과 게으름, 빠름과 느림의 순간들이 있다. 강물에도 빠름과 느림이 있다. 늙은이의 삶은 느리다. 슬로우 라이프다. 자연과 더불어 느리게 사는 것, 한가로이 거닐며 사는 것이 늙어가면서 생활하는 ‘느림의 미학’이다. 속도의 세계에서 여유의 삶으로, 평안한 느낌이 드는 삶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게으름을 피우며 사는 삶, 게으름도 하나의 능력이다. 느긋하게 즐기는 삶이 나쁘지 않다. 속도에 중독된 사람들을 향해 게으름을 찬양하자는 것이 아니고, ‘느림의 미학’도 나름 살아볼 만하다는 말이다.

‘느림’이란 말에는 ‘나태’라는 부정적인 의미가 담길 수 있지만, 대책 없이 게으름을 피우는 것이 아니라면 노인들로서는 세상에 대한 무관심으로 어느 정도 게으름을 피울 권리를 가질 수 있다. 그러나 지나친 나태는 육체적·정신적 노력의 결핍을 가져오며, 영혼을 타락시키고 비탄과 우울증에 빠지게 만든다. 나태는 평안함을 추구하는 마음에서 오는 것이지만, 용기를 잃어버리거나 삶에 자극이 없을 때 찾아온다. 모든 일이 다 무의미하다고 느껴질 때 찾아온다. 우울증은 정말 무서운 병이다. 스스로 세상을 하직하는 일도 생긴다.

남들이 ‘빨리빨리’를 외치며 오늘보다 나은 내일을 위해 정신없이 달릴 때 인생의 무상을 느끼고 어슬렁거리며 권태를 즐기는 삶은 어떨까? 사회철학자 피에르 상소는 ‘느리게 산다는 것의 의미’에서 권태의 위험성을 경고하면서도 느리게 살아가기를 권하고 있다. 무책임한 권태가 아니라 창조적인 휴식을 강조한다. 인간의 모든 불행은 휴식을 모르는 데서 나온다고 했다. 느리게 사는 지혜가 진정 백수(白手)의 길잡이라고 말한다. 백수의 철학으로 “한가로이 빈둥거릴 것, 남의 말을 잘 들을 것, 일상에서 권태로울 것, 느긋이 기다릴 것, 절도 있는 생활을 할 것” 등을 권하고 있다. 어떤 것에 구애받지 않는 자유로움으로 느림 속에서 나를 찾으며 살 것을 권장하고 있다.

늙어가면서 시간에 쫓기듯이 살지 말자. 몸은 늙어도 마음은 청춘이라는 말을 하지만, 나이 들어 청춘으로 살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피곤한 것인지 모른다. 요즘 사람들이 자주 쓰는 말은 ‘바쁘다’이다. 심지어 ‘바빠 죽겠다’이다. 이건 젊은이들의 짜릿하고 흥분된 삶이다. 노인의 삶이 ‘바쁘다’, ‘바빠 죽겠다’가 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노인이 되어서는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느리게 관조하는 삶을 살아야 할 것이다.

하루에 두어 시간씩 하는 일 없이 정신적 여유와 성찰에 빠져보는 것은 어떨까. 창 넘어 전개되는 들판과 석양의 노을을 감탄하며, 와인이 아니라도 소주 한 잔 놓고 보내는 시간은 어떨까. 생애과정에서 단계마다 삶의 의미와 즐거움이 있다. 짜릿하지는 않더라도 사랑의 마음으로 너그럽게 세상을 바라보는 즐거움이 노년의 ‘느림의 미학’이리라.

우리는 속도감에 빠져 살아왔다. 빠름에 중독된 사람들이 많다. 오토바이를 타고 광폭하게 질주하는 아슬아슬한 삶이다. 대중적인 스타들, 눈앞의 이익에 눈이 먼 정치가들, 기업인들은 빠름에 사활을 건 사람들이다.

토끼와 거북. 빠른 토끼보다는 거북이처럼 느릿느릿 관조하는 삶이 필요하다. 살면서 지나쳤던 맑은 하늘과 지천으로 늘린 들꽃, 새들의 지저귐을 느끼면서 살자. 아내의 손목도 새로이 잡아보자. 느린 것에서 우리의 삶은 숙성되어 간다. 노인 백수는 노는 것이 당연지사다. 밤낮으로 한가하게 뒹굴뒹굴 시간을 죽이는 것은 자신을 죽이는 일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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