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식 포항지역위원회 위원·시인
이상식 포항지역위원회 위원·시인

밀을 가공해 만든 대표 음식은 빵과 국수다. 이는 여러 면에서 대비되는 식품이기도 하다. 서양과 동양, 고급과 저급, 그리고 귀족과 서민으로 나뉘는 이미지가 그러하다. 물론 엄밀하게 구분되진 않는다. 오늘날 양자 공히 일반 대중이 즐기는 먹을거리가 됐다.

세계 각국이 자랑하는 빵의 종류는 다양하다. 특히 유명인 일화가 간직된 경우도 많다. 이들 스토리텔링은 그 가치를 한층 특별하게 만들고 유명세를 더한다. 무굴 제국 시대부터 무슬림 평민들 아침 식사였던 ‘난’은 인도식 빵이다. 인도 요리가 세계화되면서 덩달아 국제적 인기를 누린다.

도시 뉴욕을 상징하는 빵은 베이글. 19세기 가난한 유대인 이민자들 주식이다. 뉴요커는 일요일 아침에 먹는 베이글을 신성한 메뉴로 여긴다. 기독교 중요 교리인 삼위일체로 표현할 정도다. 이는 베이글에 크림치즈와 훈제 연어를 얹은 형태다.

영화 ‘티파니에서 아침을’ 장면에도 이 빵이 나온다. 맨해튼 5번가 쇼윈도 앞에서 헵번이 커피와 베이글을 먹는 광경. 그녀가 바라보던 티파니 매장은 관광 명소가 됐다. 미국의 보석 브랜드가 유럽 명품과 경쟁이 가능했던 것은 헵번의 공로가 크다. 연전 루이비통이 속한 그룹에 매각됐다.

일명 ‘프렌치 스틱’으로 불리는 바게트는 프랑스를 대표하는 빵이다. 바삭한 표면은 내부 수분을 수일간 유지한다. 병사들 바지에 들어갈 빵을 만들라는 나폴레옹 주문이 시초란 얘기도 전한다. 조개 모양 작은 케이크인 마들렌은 루이 15세와 연관됐다. 대혁명 당시 단두대 처형된 왕비 앙투아네트는 실수로 브리오슈를 들먹였다. 이는 버터와 달걀이 듬뿍한 케이크다.

국수는 진정한 서민들 끼니다. 과문한 탓인지 몰라도 면발에 담긴 권력자는 보지 못했다. 오직 보통 사람들 사연만 진득할 뿐이다. 언젠가 해외여행 경험자를 대상으로 귀국 직후 제일 먹고 싶은 음식을 조사했다. 대다수 미국인은 맥도날드 빅맥이었으나 우리는 자장면을 꼽았다.

원래 자장면은 중국 베이징과 산둥 지방 서민들 식사다. 근대 초기 한국에 들어와 우리 입맛에 맞게 변했다. 인천의 식당이 원조라 하나 근거는 없다. 짬뽕은 나가사키 거주 중국인이 개발했다. 그 ‘나가사키 잔폰’은 한국의 짬뽕으로 정착했고 그래선지 사전은 ‘짬뽕’을 일어로 본다.

르네상스 시대의 천재 다빈치도 국수와 인연을 맺었다. 이탈리아 요리인 파스타와 스파게티를 발명한 탓이다. 그는 ‘먹을 수 있는 끈’이란 이름을 붙였고 이를 쉽게 섭취코자 포크와 냅킨도 고안했다. 참고로 걸작 ‘최후의 만찬’ 식탁엔 무국·계란·장어 요리와 함께 빵이 놓였다. 불가에선 국수를 ‘승소’라 칭한다. 수행승이 국수만 보면 절로 웃음이 난다고 붙여진 명칭.

지난해 EBS 프로 ‘아주 특별한 기행’은 한국의 국수를 소개했다. 산사 스님이 담근 동치미 국수, 옥수수묵 귀여운 홍천의 올챙이국수, 민물고기 걸쭉한 예산의 어죽 국수, 황태 육수 해맑은 인제의 황태 칼국수 그리고 석이버섯 고명을 올린 놋쇠 그릇 오롯한 함양의 종가 국수 등등.

조현명 시인의 작품 ‘모리라는 말’에는 포항의 모리국수를 노래한다. 이는 구룡포 어부가 즐긴 해물 칼국수로 칼칼해 얼큰한 맛이다. 시인은 모리 양푼을 긁으며 부조리한 세상을 탄한다. 새해가 밝았다. 시린 동해 바다를 보며 모리국수를 들이키는 송구영신 나들이는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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