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병진 경주지역위원회 위원
서병진 경주지역위원회 위원

경주 서남산 남쪽 자락의 마석산 용문사를 다녀왔다. 작은 암자지만 절의 왼쪽 바위 앞면에 계시는 부처님을 보고 싶어서였다. 오르는 길이 가파르지 않고 멀지도 않아 혼자서 운동 삼아 자주 오르는 곳이다. 이번에는 지인 몇 사람과 함께 올랐다. 주차장에 차를 두고 조금 오르면 천왕문(일주문)이 나온다. 천왕문이 아니라, 사각의 큰 바위가 빗겨 누워, 바로 서 있는 큰 바위에 기대어 직삼각형의 공간이 생겼고, 계단으로 된 길이 나 있어 천왕문 구실을 하는 곳이다. 속계에서 불계로 들어가는 관문 같은 느낌이 드는 곳이다.

돌계단을 잠시 걸어 오르면 3m 정도 높이의 긴 석축이 있고 그 위의 앞이 탁 트인 전망 좋은 곳에 서향으로 용문사가 나타난다. 큰 어려움 없이 오를 수 있지만, 석축 계단을 올라 20m 정도 동남쪽으로 돌아가면 올 때마다 와우! 하고 탄성을 지르게 된다. 선곈지 불곈지 속계가 아니라는 느낌이 드는 곳이다. 탁 트이는 느낌. 순간적이지만 잡념이 일순 사라지는 느낌. 천인단애의 기암괴석은 아니라도 상쾌한 가슴 트임 때문이다. 여기 바위 앞면에 부처님이 서 계신다. 아마 이 부처님 공양하려고 이 절이 존재하리라.

큼직한 자연 암벽에 마애불입상이 천년의 세월을 한순간에 보낸 듯,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한 표정으로 처연히 서 있다. 높이 약 4.6m, 얼굴과 왼손만 완성되고 나머지는 미완성인 채로다. 미완성이라서 마애불 제작 과정을 살펴볼 수 있는 귀중한 자료라고 한다. 삼릉계곡의 상선암 마애불을 닮은 것 같기도 한 이 마애불의 얼굴은 이목구비, 코 밑의 인중선, 커다란 귀의 굴곡이 완벽하게 조각되어 있다. 손은 시무외여원인, 왼손은 손목을 덮은 옷자락과 손가락까지 완성. 머리는 민머리에 부자연스럽게 큰 육계, 살이 찐 얼굴, 눈꼬리가 날카로운 듯 반쯤 감은 두 눈, 굳은 표정으로 입을 꼭 다물었다.

왜 미완성일까? 올 때마다 생각해 본다. 조성 도중에 석공이 죽었을까? 조각하다 마음에 들지 않아 포기해 버렸는가? 석공의 머릿속에 부처의 모습이 안개에 가린 듯 어렴풋했을까? 내가 생각해도 어처구니없는 생각을 하곤 한다. 차라리 소설을 쓰는 것이 나을 것 같다.

산 이름이 마석산(磨石山)이다. 가는 돌, 즉 맷돌. 그래서 맷돌산이다. 산 정상의 큰 바위가 맷돌의 손잡이 맷손으로 보이고, 산의 형세가 맷돌처럼 생겨서 붙여진 이름이라는 설도 있고, 신라시대 어느 해에 큰 물난리가 나서 온 천지가 물에 잠겼는데 마석산 꼭대기만 맷돌만큼 남았다 하여 맷돌산이 되었다는 설도 있다. 어처구니없다는 생각이 든다.

마석산 산 이름과 맷돌바위를 이야기하던 중 동행한 친구의 말. 맷돌의 손잡이가 ‘어처구니’라고 했다. 맷돌에 손잡이인 ‘어처구니’가 있어야 곡식을 갈 수 있는데 맷손이 없어 황당한 상황이 어처구니없다는 것이다. 어학 사전에는 ‘어처구니없다’가 ‘너무 엄청나거나 뜻밖이라서 기가 막히다’로 되어 있다. 일설에는 기와지붕 추녀마루 위에 올리는 작은 동물상을 가리킨다고도 한다.

요사이 매스컴은 어처구니없는 일들을 쉴새 없이 쏟아 낸다. 모 대선 후보 아들의 도박과 성매매 의혹. 청와대 수석의 아들이 쓴 자기소개서, 공수처의 민간인 사찰, 모 후보의 부인 문제 등 어처구니없는 일들이 많다. 모 후보의 선거캠프의 분란, 당 대표의 언동이나 후보의 말실수도 어이없다. 어처구니없는 일들이 너무 많다. 백운암 마애불상님도 어처구니없어 입을 꼭 다물고 계시는가. 잠시 머리를 식히고자 산을 찾은 내가 또 엉뚱한 생각. 어처구니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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